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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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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10월호

책이 이끄는 여행

 

평등 세상을 꿈꾸며 걷는 단양팔경


_ 김용심, 사진_ 정인열

 

▲ 단양 남한강 잔도길. ⓒ작은책(정인열)


우리가 옳다!(이용덕, 숨쉬는책공장, 2020)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간의 투쟁을 기록한 책이다. 직접고용 판결을 묵살한 채 노동자를 비정규직 자회사로 내모는 거대 공기업 한국도로공사의 횡포에 맞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처절하게 투쟁한다. 그 뜨거운 기록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아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고 일어서려는 강렬한 의지와 희망이 오롯이 담겨 있다.

▲ 우리가 옳다!(이용덕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 2020)


책과 함께 충청도 단양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을 함께한 <작은책일꾼 정인열 씨의 차는 하이패스 차량인지라 톨게이트를 거침없이 휭휭 지나간다. 그래서 여행길에 가끔 마주치곤 했던, 피곤하지만 선량해 보였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들을 일으켜 세운 힘은 무엇이었을까.

도로공사 관리자가 저보고 선생님, 잠깐 자리에 앉으세요.’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댁의 선생님입니까.’ 반박했습니다. 제가 장애인으로 2002년 입사했습니다. 그동안 언제 그렇게 대우해 줬다고 선생님, 선생님 합니까. 저는 나이가 많고 직접고용이 된다 해도 얼마 다니지 못합니다. 후배들을 위해,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장애인, 비정규직, 고연령, 여성···. 세상의 모든 약한 고리를 다 모은 듯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그런데도 자신들만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보다는 더 많은 비정규직, 더 많은 약자들을 위해 싸웠다. 그래야 더는 자신처럼 끔찍한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그래야 좀 더 사람답게살 수 있는 세상이 될 테니까.

이제는 나로 한번 살아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들의 투쟁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도, 흩어지지도 않는다. 언제나 곧게 제 길을 간다. 마치 모든 이들을 품어 안는 성스러운 어머니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본래 이름: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처럼.

단양에 도착해 양방산 꼭대기에 올랐다. 비록 초모랑마처럼 드높은 산은 아니지만 양방산은 그 우뚝한 정상에 서면 단양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인다. 오밀조밀 세워진 도시를 시원하게 휘감아 내려가는 남한강 모습에 속이 탁 트인다.

▲ 양방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단양 시내 전경. ⓒ작은책(정인열)

이때 보이는 단양은 신단양이다. 1985년 충주댐의 건설로 댐의 상류에 있던 옛 단양은 거의 물에 잠겼고 주민들은 새로 구획된 신단양으로 이주했다. 개발 논리에 밀려 졸지에 실향민이 된 사람들은 고향이 그리울 때면 강둑에 내려가 하염없이 물속을 바라본다고 한다. 맑은 날이면 그 깊은 물속에서 언뜻 자신이 살던 집의 지붕이 보인다던가.

단성면 벽화마을은 그렇게 수몰된 구단양의 모습이 벽화로나마 남아 있는 곳이다. 붉은 꽃과 푸른 덩굴 사이로 간간이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 벽화마을 입구. 알록달록한 그림들 사이로 왼쪽에 있는 적성비가 눈에 띈다. ⓒ작은책(정인열)


벽화마을에서 조금 올라간 언덕에는 단양수몰이주기념관이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문은 닫혀 있었지만 주위의 수려한 경치에 취해 잠시 기념관 앞뜰을 거닐어 본다.

뜰에는 수몰 지역에서 가져온 석탑과 비석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우화교 돌다리 설명이 눈에 띈다. 마을에 꼭 필요한 다리라 모두가 호응하여 젊은이는 힘을 보태고 나이 든 사람은 곡식을 내어 돌다리를 놓았다는 사연. 그렇지. 꼭 필요한 일이라면 다 같이 호응하여 힘도 보태고 곡식도 내어 모두 함께 살길을 도모해야지. 그렇게 연대는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서 비로소 변화도 시작된다.

▲ 우화교 돌다리 기념비. 충주댐의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단양수몰이주기념관으로 옮겨 왔다. ⓒ작은책(정인열)

돈으로, 힘으로 억압하는데 우리는 연대의 힘으로 싸워야 합니다. 무서울 정도로 싸우는 동료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아직도 저들은 우리가 자기들 시다바리인 줄 압니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봐 정규직 되는 분들도 대단하지요. 하지만 남들이 하기 싫은 일들, 꺼리는 일들을 하는 것도 대단한 거란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세상의 잣대에 제 생각이 길들여진 것이죠. 노동자는 평등한 겁니다.”

그랬다. 노동은 평등하며 모든 노동자, 혹은 모든 사람들은 다 평등하다. 그 평등함을 억누르는 것이 부당함이요, 부조리며, 진짜 불법이다. 결국 문제는 하나이다. 우리가 옳다!의 저자는 그 문제를 이렇게 정의한다.

결국, 근본적 질문은 삶이 먼저냐, 이윤이 먼저냐다. 이 가치관으로 싸워야만 노동자들은 더 인간답고 풍요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삶이 이윤보다 앞서는 세상. 노동이 자본보다 소중한 세상. 그런 세상은 정말 꿈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으며 단양 잔도길을 걸어 보았다. 잔도(棧道)는 험한 벼랑이나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따라 낸 길을 뜻한다. 관광 목적으로 지었다지만 목적이야 어쨌든 굽이치는 남한강 자락을 따라 만들어진 절벽길 잔도의 풍경은 아찔하고 황홀하다.

본디 단양은 아름다운 절경이 많은 곳이다. 그 유명한 단양팔경도 있지 않던가. 강줄기를 따라 제7경과 8경인 도담삼봉과 석문을 시작으로 제1, 2, 3경인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을 두루 돌아보았다. 발길 닿는 어디나 다 절경인지라 도시의 칙칙한 잿빛 풍경에 익숙한 눈이 마냥 행복해진다.

▲ 단양 제1경인 하선암. 널찍한 마당바위 위로 보이는 크고 둥글넓적한 바위가 하선암이다. ⓒ작은책(정인열)

마지막으로 제4경 사인암을 들렀다. 사인암은 고려 때 사인벼슬을 살았던 대학자 우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우탁은 역동(易東)선생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가 어찌나 역학에 밝았던지 역이 동으로 넘어왔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 한다. 또한 우탁은 임금 앞에서도 꼿꼿한 성정으로 유명한데 고려사에 그 모습이 잘 나와 있다.

우탁이 흰옷에 도끼를 메고 궁궐 앞에 거적을 깐 채 왕의 잘못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 신하들이 상소문을 펴들고 감히 읽지 못하는데, 우탁이 크게 소리를 질러 신하로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은 죄를 알고 있느냐!’ 하고 매섭게 꾸짖었다. 신하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충선왕도 부끄러워했다.”(고려사109 <우탁 열전>)

▲ 단양 제4경인 사인암.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병풍인 양 힘차게 서 있다. ⓒ작은책(정인열)

권력에 굴하지 않는 꼿꼿한 기개가 돋보인다. 우탁이 옳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고, 부끄러움은 가르쳐야 한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저 비겁한 자본을 향해 우리가 옳다!”고 외쳤던 것처럼. 그래야 자본가들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고 뒤흔들 수 있는 진짜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깨닫지 않겠는가.

노동자 계급에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노동자들은 생산과 판매, 서비스의 주체로 마음먹으면 세상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단결과 협동, 연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톨게이트 투쟁은 그 힘의 아주 작은 일부를 보여 주었을 뿐이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별의 이름은 노동자.


*<작은책> 편집위원인 글쓴이는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보리, 2012)와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보리, 2019) 등을 썼습니다.

posted by 작은책
2020. 9. 28. 14:39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코로나19가 인간들의 일상을 멈춰 세우거나 말거나 자연은 흘러갑니다. 장마도 태풍도 끝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어릴 때 보던 따가운 햇살과 뭉게구름도 보입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특히 농부와 어부들의 피해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었지요. 좋은 소식은 대법원이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전교조가 다시 노동조합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된 소식이었습니다. 대법원 결과가 나오기 전에, 언제든지 정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을 직권 취소할 수 있었지만 외면해 왔습니다. 7년 사이에 무려 서른 명이 넘는 교사들이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떠돌았습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제라도 빨리 이들을 복직시키고 해직 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나쁜 소식은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 거부였죠. 의사 수를 늘리자는 정부 방침에 자기들 수익이 떨어질까 봐 온갖 해괴한 논리로 진료를 거부하며 집단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의대생은 의사 수, 정말 부족하냐’, ‘아픈 데도 진료 받지 못하신 분이 정말 있냐고 어이없는 팻말을 들고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몰라서 묻냐?”고 되묻고 싶었습니다. ‘전교 1수준이 그것뿐인가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10월호 특집에서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독자님들, 그런 후안무치한 자들한테 치료받지 않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0916

발행인 안건모

 

 

목차

 

책이 이끄는 여행

평등 세상을 꿈꾸며 걷는 단양팔경 김용심

 

13 발행인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15 배를 육지로 올릴 때 황은주

18 궁중족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윤경자

22 전교조가 합법노조로 회복한 날 구자숙

28 삼천포에 살아요 구륜휘

30 달려라 밥묵차 성미선

36 아버지,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쓰셨다 진솔아

40 13만 원, 아니 14만 원만 받아 주세요 이근제

43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윤혜신

통통수제비

48 살아온 이야기

승무원이 꿈이었어요 김수련

54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55 시 읽고 감상하기

땅을 파서 먹고살 생각은 어떨까? 이규동

58 교장 일기

오늘 아침엔 뭐 먹었어? 최관의

63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생애주기 권해진

 

일터 이야기

67 일터에서 온 소식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 김계월

71 12만 방과후 강사들은 개인사업자가 아닙니다 김경희

77 작은책 법률 상담소

보석 제도란? 양성우

 

특집_ 의사 집단 진료 거부, 어떻게 볼 것인가

82 ‘전교 1들에게 우리가 반격할 차례다 이향춘

88 한국 의사 연봉은 OECD 최고 수준 윤효원

94 의학생들의 국시 거부에서 나타난 문제점 박찬호

100 의사 집단 진료 거부,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석균

106 의사 파업이 드러낸 의료제도의 현주소 문정주

 

112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14 옛 그림 속 여성들

신부 나이 열다섯 살 이종수

120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미국 프로농구 선수들의 외침 Black Lives Matter 고태경

126 어린이 해방과 평화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가끔가끔 시켜주시오 이주영

132 생태 이야기

범람하는 치명적 바이러스에서 벗어나려면 박병상

138 존버 씨의 시간들

관행과 실적 그리고 자살 김영선

144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동물 그림에 건 희망 박찬희

150 독립영화 이야기

미지의 세계에 들어선 엄마에게 축복을! 류미례

156 책 읽고 딴 생각

청소부환경미화원으로 이름이 바뀐들 변정수

160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64 지난 호를 읽고

166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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