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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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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년 9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우리는 어떤 내일에 닿을까

이창근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전 기획실장

  

복직하지 못한 사람 가운데는 이름을 바꾼 경우가 더러 있었다그 사정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개명까지 할 정도라니어떤 절박함이 느껴졌다한둘이 아니라서 조금 놀랐다해고자도 있고 희망 퇴직한 사람도 있었으니 굳이 해고자에게만 국한시킬 일은 아니었다아들과 함께 개명한 형(동료)도 있다살면서 이름 바꾸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통상적으로 이해되는 개명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가 처한 저간의 사정이다몸부림을 쳐 봐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였다 싶을 때그 시간이 개명의 때가 아닐까 싶다쌍용차에도 이름 바꾼 힘까지 보태졌던지 개명한 형들 또한 이번에 모두 복직을 이뤄 냈다지난 5월 4일 쌍용차 마지막 해고자들이 복직했다자그마치 10년 하고도 11개월 만이다. 2009년 쌍용차 파업 이후 줄곧 공장 밖에서의 삶이 공장 담벼락을 넘어서도 시작된 것이다. 11년 동안 직원들 상대로 피켓 들고 섰던 정문 앞에서 시업 종소리 들으며 공장이 아닌 노조 사무실로 향하던 씁쓸한 어제는 없다출근하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퇴근하는 동료들의 등을 보며 하루를 마감했던 지긋지긋하던 그 일상도 이제는 안녕이다.

▲ 지난 5월 4일 가진 마지막 복직자들의 기자회견. 사진_ 이창근

입사 동기인 정민이도 11년 만에 복직자 명단에 있었다그 사이 펄펄 끓던 서른두 살 청춘의 꿈틀거림은 지렁이처럼 마른 눈물 자국만 남긴 채 온데간데없이 휘발했다세월의 바코드라도 찍힌 듯 마른 근육과 까만 피부가 특별히 더 애달팠다이제는 40톤 트레일러를 몰지 않아도 되고 4대강 사업 끝물에 올라탔던 육중한 덤프에도 오르지 않아도 된다처가댁에 해고자 신분을 속이기 위해 명절 때마다 일 있다는 핑계 들어 더 이상 걸음 끊지 않아도 된다정민이는 11년 동안 해고자 신분을 처가와 친인척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누구 하나 묻지 않았던 것일까질문 가능한 공간을 피해 왔던 것일까이해되지 않지만 해고자 생활 11년은 통상적인 이해 범위를 벗어날 때가 많다정민이뿐만 아니라 몇몇 동료들 또한 해고 사실을 용케 숨기며 11년을 살아 냈으니까적어도 개명은 사회생활을 전제로 한다지만 있는 이름조차 쓰지 않고 스스로 사회에서 유폐시키는 삶 또한 그 속내가 얼마나 복잡했던가.

복직한 이들은 요즘 빚 갚는 데 여념이 없다월세 살던 후배 한 명이 적은 돈 모으고 은행 대출 껴 전셋집으로 들어갔다왜 그렇게 기분이 좋던지내 일처럼 기뻤다장마철만 되면 빗물이 새고 장판은 뜨고 벽지가 곰팡이로 변하는 집에그것도 얹혀 살던 또 다른 후배 또한 깨끗한 새 아파트로 전세 이사를 했다는 소식도 무척 기뻤다아이가 다섯인데 그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복직의 참 의미가 아닐까도 싶었다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이혼 위기였던 형들의 어두컴컴한 집에 환한 LED 전등이 다시 하나둘 켜지고 있다오십 넘어서도 용돈 타 써야 했던 부모님께 이제는 매달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생활이 얼마나 축복인가생각만 해도 짜릿하다피켓 들고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이들의 냉대와 작은 기사에도 여지없이 달리는 그 악다구니 댓글에도 11년 동안 견뎠다비닐 천막 밑으로 흐르던 빗물을 보면서도 마음속에 꼭 쥐었던 그 사소하고 소소한 작고 숱한 다짐들을 하나둘 이뤄 낼 수 있는 이 생활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일인가출퇴근길에서 보는 형들의 웃는 얼굴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는 요즘이다.

함께했던 동료들끼리 복직해서는 자주 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생각이 바뀌었거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찾아 봐야 할 곳도 늘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 또한 길어졌다훌쩍 커 버린 아이들과 부쩍 야윈 부모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을 더는 미뤄 두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나중으로 무작정 미뤘던 일들이 하나둘 내 일로 몰려들고 애써 외면했던 경조사에도 이제는 꼬박꼬박 찾아가야 한다해고자라서 열외로 살았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대열에 합류도 해야 하고 끼어도 봐야 한다이것저것 핑계 대기에는 사회가 허용하는 나이로부터도 한참을 벗어났고 통용되는 상식도 외면할 염치가 더 이상 없다늦게나마 추스를 수 있는 염치가 생겨서 다행이다그렇다고 그저 일상이라는 이불을 덮고 아늑하게 드러눕고만 있기에는 바닥이 무척 차갑다해결되지 않은 쌍용차 손배 가압류 법정 이자만도 초 단위로 불어나 어느새 40억이 넘었다정권이 바뀌고 경찰청장이 바뀌어도 감감무소식인 쌍용차 손배 가압류 문제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밥 먹을 때마다 따끔거린다.

▲ 지난 2월 복직 연기 발표에 쌍용자동차 정문에서 항의하는 복직 대기자들. 사진_ 이창근

가해자와 피해자는 기억의 순간이 다르다가해자는 가해의 순간이 아닌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은 자기 행동의 근거와 알리바이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피해자는 피해의 과정이 아닌 피해 그 순간과 그 이후를 기억한다그런 면에서 둘의 화해는 불가능하다그저 조정하고 타협할 수밖에 없다쌍용차 해고 사태는 그런 점에서 공장 안에서는 회피되고 있다직면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기회조차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세월의 유속만 믿고 아픔이든 슬픔이든 그저 그 시간 속에서 씻겨 나가기만 바라는 것 같다피해자라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그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 것이 우선이다가해자 또한 마찬가지다. 4년 먼저 복직한 나로서는 이 내재하는 갈등이 가끔 두렵다표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입 닫고 있는 그 마음 안에 어떤 분노가 자리 잡고 있는지 자주 두렵다이것은 우리 모두의 손해로 때론 낭패로 다가올 것이고 결국에는 회사 스스로 무너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복직한 이들의 생의 가장 따뜻한 날들이 길어지길 바라는 마음까지 무너지면 안 되지 않는가.

내 노트북 바탕 화면은 파업 당시 공장 옥상에 걸터앉은 동료들의 사진이다모 기자가 찍은 이 사진은 2009년 7월 말의 맑은 여름날이다옥상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작게 잡혔다지난 해고 기간 동안 나는 이 사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고 다짐도 했다우리는 반드시 내일에 가 닿겠노라고그러나 어떤 내일인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영글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았다다만 함께 살자는 구호가 자음과 모음이 되어 만들어 내는 어떤 말이었으면 했다모두가 복직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쌍용차 복직 노동자들의 내일은 어떤 날이어야 할까아니 어떤 내일이면 기쁘고 즐거울까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개인으로 친절과 배려가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면 좋겠다우리가 복직 과정에서 축복처럼 받았던 수많은 연대와 사랑과 기쁨이 드디어 우리를 통해 흘러 나갔으면 좋겠다장영은 작가의 말처럼 나의 고통을 과장하지 않고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인간의 품위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더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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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9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교장 일기

 

교장과 수다 떨 수 있는 학교

최관의/ 서울율현초등학교장,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저자

 

 

교장과 수다를 떨 수 있는 학교, 이런 학교에 근무하는 게 내 꿈이었다. 이제 내가 교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런 학교를 만드는 게 결코 쉽지 않더라고. 마음 같지 않아. 수다는 아무하고나 떨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수다를 떨려면 많은 게 갖춰져야 하더라고. 수다가 가능한 문화가 만들어져야 가능하더라니까. 이게 안 되면 수다가 아니라 간담회, 좌담회 또는 잘해야 토론회 수준이나 될까. 설교나 다툼이 될 수도 있고. 어떻게 해야 교직원과 교장이 수다 떨 수 있는 학교를 만들까 생각해 봤어. 실제로 그렇게 하려 노력하고 있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수다가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하며 찾아낸 핵심 몇 가지를 정리해 보려고.

다른 것보다 먼저 직급을 내려놓아야겠어. 교장이 아무리 편안하게 이야기하자고 말해 봐야 헛말이더라고. 시어머니가 아무리 친정 엄마처럼 생각하며 지내자고 말해 봐야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냥 교장이라는 건 인정하고, 우리 문화 속에서 교장이라는 낱말이 품고 있는 의미를 받아들이되 그 선에서 버릴 수 있는 건 최대한 버리고 떨쳐 내는 거야. 쓸데없는 권위,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목에 힘주는 권위만은 내려놓는 거지. 내가 교장으로 발령 날 때부터 내 친구가 농담처럼 하는 진담이 있어. 어디 가면 수저 먼저 놓고, 물 따르고, 차는 자기 손으로 타 먹고 그러라고. 교장 대접받으려 하지 말라는 말이지. 특권을 누리려고도 하지 말고.

그러면서도 교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해 나가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해. 권위를 얼마나 내려놓을 건지는 그 사회, 조직의 소통 문화, 의사 결정 구조 등을 살펴서 정해야 한다고 봐. 권위를 내려놓고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마저도 그 조직, 그 사회의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는 있어.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있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내가 지금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조직과 구성원의 특성 그리고 나의 특성을 함께 살피면서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거지. 자칫하면 아이들 포함 1250명이 사는, 학부모 포함하면 3~4천 명의 조직이 무너지는 수가 있으니까 상황에 맞게 수다를 떨며 살아야지. 하지만 조금씩 수준을 높여서 수다의 편안함을 늘이는 게 내 목표야.

두 번째로 나이를 떠나야 수다가 가능하다고 믿어. 내 나이는 지금 학교에서 어느 정도냐고? 랭킹 1! 36개월 뒤 정년퇴직이지. 나이가 지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주고받는데 큰 장애가 돼. '젊은 놈이 말하는 뽄새 봐.' 하거나 '너 나이 몇이야?' 하면서 민증 까자고 덤비는 사람도 있어. 나이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보장하거나 지혜의 총량을 결정하거나 인간성을 보증하지는 못하는데도 그래. 오죽하면 우리말에 존댓말이 있어서 민주주의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주장도 있을까.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대접받겠다는 마음을 털어 내야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 갈 수 있고 수다가 가능하단 말이지. 외국에 나가 지내다 온 분들 가운데 이야기를 들어 보면 직책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과 편안하게 이야기 나눈다고 하더라고. 마치 비슷한 나이의 친구와 이야기하는 느낌이라나. 나이를 털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나이로 인한 외로움과 소외감에서 벗어나고 젊은이의 총명함, 추진력, 모험심과 나이 든 이의 지혜로움, 멀리 넓게 보는 눈, 많은 사람을 겪은 경험이 버무려진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너무 크게 볼 것 없고 지금 당장 서로가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나이를 털어 낼 용기가 젊은이와 나이 든 이 모두에게 필요해. 나이가 주는 혜택을 미련 없이 털어 낸 채 말하려 노력하고 있기는 한데 마음같이 쉽지 않아.

마지막으로 성의 구별을 떠나야 한다고 믿어. 난 초등 교사라 평생을 여성이 더 많은 환경에서 살아왔어. 대학교 가서는 우리 반 40명 가운데 남자가 셋이었고 발령받은 뒤에는 교사 60명 가운데 남자 교사는 나 혼자일 때도 있었지. 그렇게 살아가는 게 내 삶이야. 그런데 남녀라고 선을 긋고 말을 섞지 못한다면 남자와 여자로서 갖고 있는 장단점을 보완하고 보충해서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는 데 어려움이 생겨. 그냥 남녀를 떠나 사람으로, 교사로, 한계와 부족함을 갖고 있는 존재로, 가슴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 세상에 유일한 특성을 갖고 있는 존재로 볼 때 존중하면서 손을 내밀어 잡아 주고 이야기하고 일을 풀어 갈 수 있다고 믿어. 어색하지만 남녀의 선을 지키면서 사람으로 만나려 노력하는 중이야.

직급, 나이, 남녀를 내려놓으면 뭐가 남을까? 사람, 인간. 그냥 사람으로 보는 거지. 직급, 나이, 남녀라는 낱말에는 어느 정도 편견이 담겨 있어. 물론 법에 정한 권한과 책임이 있는 직급의 특성을 인정하면서도 수평적으로 관계를 풀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하는 거야. 우리 사회가 만들어 온 담장이지. 직급이라는 담장, 나이라는 담장, 남녀라는 담장. 어떤 담장은 담만 있는 게 아니라 고압선까지 쳐 놓았다는 느낌이 들어 섬뜩할 때도 있어.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지. 부부, 부모 자식, 형제, 친구 등 모든 사이에는 선이 있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로서 갖고 있는 존엄성과 간직해야 할 자기만의 영역이 있어서 그것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 누구도, 어떤 권력도 넘어가면 안 되지만, 그것은 직급, 나이, 남녀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이런 마음으로 만나는 걸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의 만남이라고 봐.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가운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수다야.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선에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학교 문화 속에서 살고 싶어. 아이들, 교사, 직원, 학부모, 지역 사회 구성원들과 수다를 떨되 교장으로서,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내는 그런 교장. 수다를 떤다는 것은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존엄성을 지켜 주는 것이며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해. 조금 더 민주화된 사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교육에 충실한 학교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은 수다에서 시작된다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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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년 9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소성리 부녀회장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

손소희/ 사드 반대하는 성주 주민

 

 지난 528일부터 29일까지 밤새도록 군대와 경찰이 합동으로 소성리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듯 업그레이드된 사드 장비를 소성리로 추가 반입했다. 성주 주민, 김천 시민, 평화 지킴이들 100여 명은 사드 장비 추가 반입을 저지하기 위해 사드 기지로 오르는 진밭교를 막았는데, 8000명은 족히 돼 보이는 경찰은 통행을 차단하고 주민을 고립시켜 밤새도록 감금했다. 해가 밝아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길을 열어 주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밤새도록 갇혀 있던 사람들은 생리적인 현상도 억압당해, 급기야 한 여성은 도로 한복판에서 담요를 두르고 볼일을 보는 수치와 모욕을 감내해야 했다.

2016년 사드 배치가 소성리로 결정되고 난 이후부터 늘 그러했지만, 소성리의 연로한 할머니들이 치욕스럽게 밤을 지새워야 했고, 소성리는 월례 행사처럼 수모를 겪었다.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산 지가 벌써 4년이다.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소성리 할머니들과 평화 지킴이들은 63일 성주경찰서를 찾아가 성주경찰서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경찰들이 우르르르 달려나와서 우리의 앞길을 막았다. 할머니라고 봐주지 않았다. 경찰들이 막는 바람에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뙤약볕 아래서 한참 동안 연좌 농성을 해야 했고, 연로한 할머니들은 건물 현관 그늘진 자리로 모시자고 했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 건물 현관 옆 경사로를 조금 비워서 할머니들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성주경찰서 안에서 항의를 하고 있는 소성리 주민들. 사진 제공_ 소성리주민대책위


경찰 한 사람이 할머니들에게 다가와 괜히 실없는 말을 걸었다. "다른 성주 주민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소성리 주민들만 맨날천날 이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깐죽거리고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을 했다. 할머니들은 용케 그 말을 알아듣고는 노발대발 화를 냈다. 소성리 주민들을 마치 별난 사람 취급하는 데 화가 나고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경찰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 강하게 항의했다.

소성리로 사드가 들어오는 바람에 마을은 경찰들의 군홧발에 엉망진창이 되고 주민들은 전쟁 위험을 안고 불안하게 살아갈 걱정이 태산인데, 그 경찰의 말은 소성리를 폄훼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항의에 경비과장이 그 경찰을 불러왔고, 그는 정중히 사과하기는커녕 소성리 주민들을 걱정해서 한 말이라고 둘러대어, 오히려 할머니들의 부아를 돋우었다. 그때 마침 소성리 부녀회장 순분 씨는 뙤약볕에서 오래 앉아 있어 현기증이 나고 혈색이 안 좋았다. 경찰도 걱정이 되었는지 119 구급대원을 불러서 혈압을 재고, 머리에 시원한 아이스팩을 올려 주었다.

아이스팩을 머리에 대고 있던 순분 씨는 사과 같지 않은 말로 부아만 돋우는 경찰에게 화가 나서 바닥을 향해 아이스팩을 내던졌는데, 하필 아이스팩이 바로 앞 건물 기둥을 맞고는 옆에 서 있던 여경의 얼굴로 튀어 버렸다. 의도치 않게 엉뚱한 사람이 맞았으니 순분 씨도 놀랐고, 미안한 마음에 여경을 향해 사과를 했다. 정보과 형사와 경비과장이 나와서 여경의 상태를 살피고는 괜찮다고 했지만 순분 씨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에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아이스팩은 녹아서 물컹한 상태였기에, 다른 이들도 여경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얼굴에 살짝 튄 정도라서 다친 데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 일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우리는 성주경찰서 이정수 서장에게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 지킴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와 폭력 진압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면서 날마다 저녁 시간에 성주경찰서 앞에서 피켓팅과 집회를 이어 갔다. 그러나 서장은 사과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한 달 가까이 성주경찰서 앞에 진을 치고 항의하며 경찰들의 만행을 선전했다. 그러다 72일 오전에 성주경찰서 이정수 서장에게 사과를 받아냈다. 그렇게 작은 승리를 거두었다.

성주경찰서 앞에서 항의를 하고 있는 소성리 주민들. 경찰은 우산을 쓰고 주민들은 땡볕에 있다. 사진 제공_ 소성리주민대책위


그런데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지난 72일 오후 미군들의 똥오줌과 쓰레기를 수거할 쓰레기 수거 차량과 분뇨차를 사드 기지로 들여보내기 위해서 경찰 병력 500여 명이 소성리로 들어왔다. 또다시 10시간 넘게 진밭교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여성들이 바리케이트로 우르르 들어가 시간을 끌면서 막고 저항했다.

오전에는 사과하고 오후에는 소성리로 병력을 배치하느라, 경찰서장은 똥줄이 많이 탔었나 보다. 그래서 억지 춘향으로 사과를 했었나 보다. 우리는 10시간을 저항하면서 마음껏 성주경찰서장을 비웃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갑자기 고령경찰서에서 소성리 부녀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조사받으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이라고 했다. 성주경찰서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고령경찰서로 사건이 접수되었다고 했고, 정보과 형사는 아이스팩으로 맞았던 여경이 고소했다고 알렸다. 정보과 형사는 여경이 까칠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요즘은 상급자라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자신들이 말려도 그 여경이 고소를 했다면서 개인의 탓으로 돌렸다.

728일 오후 2시 순분 씨는 고령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 '특수'가 붙은 사항이라 가볍지 않았다. 변호사의 입회하에 조사를 받았다. 부녀회장이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간다는 소식을 들은 할머니들도 봉고차를 타고 고령경찰서로 향했다. 부녀회장만 고소했다니까 더 괘씸하고 억울하고 속이 터졌다. 성주대책위 이종희 위원장도 참외를 따다가 고령경찰서로 쫓아오고, 박수규 대변인도 하우스 공사 하다가 고령경찰서로 달려왔다. 소성리에서 사드 반대 하는 동지 열댓 명이 소성리 부녀회장이 조사받는 동안 고령경찰서 마당에 설치된 흡연 구역 정자를 차지하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 피우러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지루한 시간을 여럿이 함께 모여 우스갯소리를 해 가면서 화기애애하게 보냈다.

순분 씨는 자신의 일로 여러 사람들이 일도 못하고 경찰서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마음이 힘들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그게 어디 당신의 일이냐고, 다 같이 했는데 우리도 같이 조사받아야지, 하면서 위로하며 서로 힘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제 첫 조사가 끝났다. 조사를 받으면서 확인한 건 여경의 고소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성주경찰서가 이미 내사를 진행했던 거다. 소성리 주민들은 부녀회장을 홀로 싸우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경찰 조사를 마치고 다함께 고령에서 제일 유명한 돼지국밥집으로 향했다.

posted by 작은책
2020. 8. 27. 15:03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문재인 촛불 정권이 탄생하면서 금방 바뀔 줄 알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도 금방 규명될 줄 알았고, 전교조,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고, 해고된 노동자들이 복직되고, 비정규직이 감축되고, 양심수들도 석방되고, 정당한 파업을 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도 취하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것 한 가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국회에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국회를 마비시키는 미통당 때문이라고 판단해 여당에게 180석 정도,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줬습니다. 여당 의석만으로 법을 뜯어 고칠 정도로 몰아준 것입니다. 이제는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요? 정기 국회가 열리면, 건국 이래로 사상을 검증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데 써 먹던 국가보안법은 폐지되는 걸까요?

수구 세력들이 발악을 합니다. 지난 815일 광복절, 나라를 찾은 기쁨을 나눠야 할 뜻 깊은 날에 전광훈 같은 극우 세력들이 광화문을 점령했습니다. 민족이 해방된 날에 제국주의의 상징 성조기를 흔들고, 우리나라를 짓밟았던 일장기, 욱일기까지 등장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도 확산시켰습니다. 대체 어쩌자는 걸까요.

독자님들, 이달 특집은 지난 730일 국회에서 속전속결로 통과된 주택임대차보호법입니다. 서민을 위한 법인데, 왜 수구 미통당과 찌라시 언론에서는 이제 전세는 씨가 마를 것이고, 집값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협박을 하는 걸까요? ‘여러분, 이거 다아 거짓말인 거 아시죠?’

 

2020918일 안건모

 

 

목차


책이 이끄는 여행

그들의 마지막 길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최규화

12 발행인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14 회사 횡포에 맞서 볼 만할까요 -최창덕

19 소성리 부녀회장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 -손소희

25 은혜롭고 평화로운 은평마을이 사라졌다 -박지현

29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오징어김밥 -윤혜신

35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36 살아온 이야기

너는 우리와 달라 -김수련

42 시 읽고 감상하기

130원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박영수

45 교장 일기

교장과 수다 떨 수 있는 학교 -최관의

50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슬기로운 한의사 생활 -권해진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55 우리는 어떤 내일에 닿을까 -이창근

61 벼랑 끝에 매달린 울산 북구 체육강사 -김문오

68 기간제 교사는 교사다, 아니다,

정부 입맛대로 정한다 -박혜성

73 작은책 법률 상담소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김묘희

 

특집_ 주택임대차보호법

78 올겨울 이사 갈 집이 남아 있을까? -이하나

82 겨우 2년 거주제? 반 사회적 범죄 -최창우

86 세입자가 건물주한테 대들 수 있는 법 -이성영

90 감동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최지희

96 내가 방문한 곳은 이었다 -이선영

 

100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02 옛 그림 속 여성들

화가 신씨, 혹은 현모 신사임당 -이종수

108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소비자 권력과 여론 -고태경

114 어린이 해방과 평화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이주영

120 생태 이야기

집중호우에 물꼬 둘러보던 일상으로 -박병상

126 존버 씨의 시간들

아픈 게 내 탓이 아니야 -김영선

132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마음과 눈과 손으로 그린 그림, 동물화 -박찬희

138 독립영화 이야기

특별하지 않은 엄마 이야기 -류미례

144 책 읽고 딴 생각

허구인지 실화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소설 -변정수

148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52 지난 호를 읽고

154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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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7. 16:45 기획 특집

<작은책> 20208월호

특집_ 작업중지권

 

오늘은 배달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당신은?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귀가한 당신. 때마침 종일 내리던 비가 폭우로 바뀐 창밖을 바라보며 신속하게 배달 앱을 켭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신중하게 고심하여 메뉴를 고른 당신은 배달 전송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나 잠시 후 곧 도착할 저녁 식사를 기대한 당신에게 반갑지 않은, 문자가 돌아옵니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와 배달이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문자를 받아 든 당신은 이성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문자를 받은 즉시 배달업체에 전화를 하여 불같이 화를 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다행히(!) 이런 일은 현실에선 좀체 벌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배달 요청을 거부하는 일은, 날씨가 어떻든 간에 건당 수수료를 받아 삶을 유지하는 배달 노동자에게 생계가 달린 문제이니까요. 그가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고자 단행한 배달 거부(작업중지)는 곧바로 배달 음식점과의 계약 해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간 배달 노동자들이 폭염과 폭우 등 악천후 상황에서 배달을 거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안전운임료를 요구하며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잠시 얘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한동안 정부는 코로나19 예방 대책으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전염병 예방 대책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 있습니다. 급격히 증가한 택배 물량으로 하루 2천만 배송 건이 쏟아지는 물류센터입니다.

최근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가 보장되지 않는 일터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으로, 택배업체나 물류센터가 또 다른 전염병의 진앙지가 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유례없는 폭염이 예상되고 있는 올해, 더 빨리 찾아온 더위 속에서 바삐 물류를 옮기는 일은 그 자체로 고역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리고,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며 바삐 몸을 놀리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게다가 휴식 시간이나 휴게 공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염병보다 무서운 고용이라는 밥줄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일을 멈춘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상황에서 일을 멈추는 것이 불온한 상상인가, 우리는 이 사회에 묻고 함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모든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인의 이름을 앞세워 김용균법이라고 더 많이 불리게 된 산안법이 개정되었고, 그에 따라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보다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산안법은 일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유해·위험에서 노동자를 보호·예방해야 할 사업주의 다양한 의무를 담고 있어, 노동자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법 조항은 좀체 찾아볼 수 없지만 유일하게 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 안전보건공단의 작업중지권 카드뉴스 갈무리 화면.

이처럼 산안법은 급박한 위험이라는 제한된 상황을 설정하고 있지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추가 조항을 통해 노동자의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으면, 작업중지나 대피로 인한 해고 등 불이익 처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거나, 눈이 내려서 빙판이 생긴 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과 강한 태양열로 인해 정신이 아찔한 상황에서 급박한 위험을 이유로 잠시 배달을 멈추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고객의 요청에 따른 빠른 배송을 철칙으로 생각하는 택배회사라고 하지만, 전염병이라는 위험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당한 업무 지시는 급박한 위험이므로 업무를 거부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정부의 산재 사망 통계만으로도 OECD 1위를 달리며, 하루에도 6~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못하는 위험 사회에서, 안전 조치나 보건 조치가 미흡한 상황에서 방어적 차원에서라도 노동자가 스스로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뿐 아니라 동료의 목숨을 지킬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되고 권장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위험하면 일단 멈추고, 이를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거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일터에서 불온한 행동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상식이 되려면, 지금보다 훨씬 권장되어 일상의 행위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실시한 작업중지, 업무 거부와 거절을 근거로 해고나 계약 해지를 들먹이며 겁박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함께 이를 방어하고 지켜 내야 할 것입니다.

법 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인 제약이 되고 있는, 노동자의 작업중지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행동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도 이를 응원하고, 함께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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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년 8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직위 해제 당하고 진짜 교사가 됐다

김석현/ 전교조 대구지부 정책실장

 

나는 올해 8년 차 교사이다. 교사가 되기 전에 나는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모범생에 가까웠고 세상일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대구시교육청 현관 앞에 천막을 차리고 앉아 농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629일에 학교로부터 무단결근으로 인한 직위 해제 소식을 들었다. 내 인생 최대의 비행이다. 남들이 들으면 왜 그런 위험천만한, 어쩌면 교단에 더 이상 설 수 없을 수도 있는 길을 선택했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길이 바로 진정한 교사가 되는 길이었고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던 것들을 몸소 보여 주는 길이었다.

전교조가 2013,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아님통보를 받은 이후 2016년부터 전교조 대구지부의 전임자들에 대해 탄압이 이어졌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해직되거나 직위 해제 된 전임자가 나까지 총 5명에 이른다. 13개 시·도가 전임자를 인정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대구에서 교사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정권과 교육청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후회는 없다. 처음으로 교직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훨씬 살아 있음을, 그리고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 교사가 되었다는 기쁨은 3월에 잠깐 스쳐갈 뿐이었다. 그 이후 현실이 닥쳐왔는데, 학생들과는 잘 지냈지만 대부분 교장, 교감과의 갈등이나 이해할 수 없는 학교 내 관례들, 그리고 일부 교사들이 보이는 위선적인 행동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고 매일매일 고민에 빠졌었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대부분의 신규 교사들이 여기서 굴복을 하고 만다. 그리고 기존의 교사들과 똑같은 행동 양식을 체득하는데, 학교가 몇십 년이 지나도 잘 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기에 내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전교조 선생님들이었다.

전교조에 가입하고 활동하면서 학교가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공간이라는 나의 생각이 과연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수천 명의 교사들이 참교육실천대회라는 곳에 모여서 학교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서 치열한 토론을 하는 것들을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학교의 문제점들은 별종들만 느끼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느낄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대구는 다른 지역보다도 더 심각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 많았다.

대구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던 2월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학교에서 사무실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받았다. 몇 달 동안 쏟아질 민원이 며칠 사이에 쏟아졌다. 민원을 들어 보면 대부분의 기존에 있던 문제들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더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직업계고에서 매년 준비하던 기능경기대회라는 것이 있다. 학교마다 경쟁이 과열되어 있어서 그 대회를 위해 합숙까지 시켜 가면서 혹독한 훈련을 한다. 학생들은 합숙을 하면서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 빠지기도 한다. 최근 경북의 한 S공고에서 일어난 기능경기대회 준비생의 자살은 이러한 과열 경쟁과 무관하지 않았다. 대구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 상황임에도 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이어 가는 학교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경쟁은 준전시 상황에서도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진단평가(일제고사)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중단되지 않았다. 시험지는 이미 2월에 인쇄가 되어 3월에 학교에 모두 배달이 되었다. 하지만 개학이 연기되면서 시험을 치르지 못하다가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된 5월과 6월에 진단평가를 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 교육 관료들은 학생들의 실질적인 기초 학력을 길러 주기보다는 단순히 객관식 평가를 통해서 적당히 부진 학생을 걸러 내고(교육적으로 몇 점 이하가 부진 학생인지 근거가 없다) 제대로 시간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 속에 남겨서 공부를 시키면 기초 학력이 길러진다고 주장한다. 탁상행정도 이런 탁상행정이 없다. 결국 학생들을 입시 경쟁으로 내몰고 SKY에 진학할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여 교육 수도의 자랑으로 삼는 것(대구는 자칭 교육 수도이다), 그것이 코로나19 감염 위험 속에서도 진단평가를 실시하는 이유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 대구의 한 중학교 앞에서 김석현 정책실장이 진단평가 반대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전교조 대구지부

학교에서는 이런 교육적이지 못하고 기만적인 일들이 넘쳐 난다. 그렇기에 학교 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교육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나는 노조 전임자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구시교육청의 독선과 불통은 코로나19로 더 심해지고 있는데, 소통하지 않는 대구시교육청에 제동을 걸 조직은 전교조 대구지부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전교조 대구지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대화와 소통으로 위기를 극복해 보자며 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했지만 대구시교육청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전임자들을 직위 해제 하는 것으로 답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강은희 교육감에게 대화와 전임자 인정을 요구하며 교육청 현관 앞에 천막을 치게 된 것이다.

▲ 지난 630일 대구시 교육청 마당에서 대구 교사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_ 전교조 대구지부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나를 보고 학교에서 수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 교사의 본분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교직에 들어오면서 깨닫게 된 것은, 교사는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혀서는 안 되고 세상 밖으로 나가서 학교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싸움을,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서로 무관해 보여도 나의 수업과 교육 활동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한데 이를 외면하고 어떻게 수업에서 정의를 논할 수 있을까? 나는 직위 해제를 당했지만, 그리고 길거리의 교사가 되었지만, 오히려 이제야 진짜 교사가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어서 전교조 법외 노조 문제가 해결되고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길거리에서 겪었던 우리 삶의 불편한 진실들을 나누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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