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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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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1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시래기 만찬

윤혜신/ 밥 짓고 꽃밭 가꾸는 시골밥집 미당주방장, 착한 밥상 이야기저자

 

 

먹고, 입고, 자는 것 중에 (이게 살림살이인데)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 보면 단연코 먹는 일이 우선이다. 옷이야 서너 벌로도 살 수 있고 집이야 내 몸 눕힐 한 평만 있으면 되지만 먹는 일은 하루 세끼 꼬박꼬박 안 먹어 주면 살 수가 없다. 내가 학창 시절에 종교적인 이유로 금식이라는 걸 몇 번 해 봐서 잘 아는데 하루, 이틀, 사흘···. 이 사흘째가 되면 아주 죽을 맛이다. 살맛이 안 나면서 기운은 기운대로 쪽 빠지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수첩에 금식이 끝나면 먹어야 할 음식 목록을 적는 일이다. 그러다 금식이 풀리면 보식이라고 멀건 풀띠죽 한 그릇에 동치미 한 보시기를 먹는데, 그게 뭐라고 먹고 나면 어디서 그런 힘이 샘솟는지, 기어갔다가 뛰어온다. 밥 아니 죽 한 그릇에 사람이 죽었다 살았다 한다. 올해는 그래서 먹는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한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푸성귀들은 비실거리고(온실 재배) 비싸지고 제맛도 안 나니, 나는 봄부터 가으내 잘 갈무리해 두었던 먹거리 주머니들을 슬슬 풀어 본다. 마른 채소들, 마른 나물들이 제일 많다. 그중에서도 김장 때 빨랫줄에 척척 널어 말린 무청 시래기가 많으니 그걸로 별미를 만들어 보려고 가져와 삶기 시작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과 비타민, 5대 영양소까지 배웠고, 요즘은 하나 더해서 6대 영양소가 섬유질이다. 시래기는 그야말로 별 영양가가 없는 거렁뱅이 음식으로 취급되다가 요즘처럼 생활습관병이 젊어서부터 생기는 영양 과잉 시대에 꼭 필요한 필수 영양 식품이 되었다. 그러니 겨우내 이 시래기를 맛나게 먹고 내장과 혈관의 나쁜 기름을 쭉쭉 씻어 내자.

정월 대보름에 먹는 나물에 시래기나물이 빠지지 않는다. 나물로 볶아 먹어도 맛나지만 나는 요즘 뻑하면 시래기를 푹 지져 먹는다. 시래기에 된장을 넉넉히 풀고 멸치와 다시마도 한쪽 넣어 물을 넉넉히 잡고 한 시간 뭉근히 끓이면 국물이 잘박하게 졸아든다. 이때 파, 마늘, 고추 같은 양념을 더하고 마지막에 들깨 가루와 들기름을 넣어 간을 맞춘다. 시래기지짐 한 냄비 끓여 놓으면 당분간 반찬 걱정이 없다. 갑작스레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들에게도 뚝배기에 바글바글 데워 주면 게눈 감추듯이 뚝딱 먹어 치운다. ‘밥 한공기 더!’를 외치며, 어디서 이런 맛난 시래기를 먹느냐면서.

이 시래기가 또 효자인 게, 어디에 넣어도 순둥순둥 잘 어울린다. 딱히 반찬이 없을 때 숭숭 썰어 된장, 들기름, 마늘, 국간장에 주물주물 무쳐서 밥할 때 얹어 밥을 지으면 시래기밥이 된다. 여유가 있으면 그 안에 홍합도 넣고 조갯살도 굴도 넣는다. 나는 입맛이 워낙 촌스러워서 해산물보다는 멸치 서너 마리 넣고 시래기 듬뿍 올려 밥을 지어 먹는 걸 더 좋아한다. 간이 조금 싱겁다면 양념간장을 살짝 넣고 비벼도 좋다. 겨울이라 미나리를 종종 썰어 미나리양념장을 만들면 향긋하니 입맛이 돈다. 우리 집 개골창에 요즘 미나리가 한창이다. 신기하게도 날이 추워지면 미나리가 더 파랗게 올라온다. 겨울엔 상록수 빼고 파란 건 보리와 미나리다. 식당 일은 보통 2시가 넘어야 끝나니까 우리 일꾼들과는 2시에서 3시 사이에 점심을 먹는데, 그즈음엔 배가 한창 고플 때라 뭔들 맛있지 않겠냐 마는, 뜨끈하게 시래기지짐이나 시래기밥을 해서 둘러앉아 먹으면 일하면서 생기는 작은 불만들이 다 녹아 버린다.

내가 시골에서 밥집을 15년 하면서 밥집 운영의 철칙 중 하나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다이다. 그러니 우리 일꾼들의 밥 한 끼는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같이 먹자는 거다. 그래서 손님 찬보다 일꾼들 밥을 뭐 해 먹일까가 그날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다. 매일 음식을 만들어 서비스하는 일꾼들인데 스스로가 남은 거, 식은 거, 맛없는 거, 싸구려를 먹는다면 어찌 맛난 음식을 만들 수 있는가! 그래서 내가 해 준 점심을 다들 기다리고 좋아한다. 정성껏 지은 밥을 먹고 나면 시시콜콜한 불만들이 사라지고 섭섭함도 사라진다.

나도 조금 힘들었다가 일꾼들이 맛있게 먹어 주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밥집 일꾼들은 14, 10, 6년씩 오래 일하는 편인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면 아마도 점심이 맛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맛있게 먹다 보면 이런저런 얘기가 자연스레 나오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바쁜 여름에는 아르바이트학생을 쓰는데, 학생들 말이 여기는 밥이 맛있어서 자꾸 일하고 싶어요.’ 한다. 내 계획이 딱 맞았다!

모두들 이 시래기지짐을 먹으면서 어지간한 고기반찬보다 낫다고 한다. 시래기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음식 중에 시래기부침개가 있다. 시래기를 무르게 잘 삶아 밑간을 하고 거기에 밀가루를 넣어 반죽을 하는데, 국간장과 들기름을 약간 넣어 지지면 구수한 별미전이 된다. 생선을 조릴 때에도 밑에 시래기를 깔고 고기찜을 할 때도 시래기를 밑에 깔면 먼저 손이 가게 된다. 맛이 하나도 없는 시래기가 요리의 주인공이 된다.

여기 충청도에서는 무청을 안 버리고 그대로 소금과 고추씨를 넣어 비벼서는 아주 짜게 강짠지식으로 김치를 담갔다가 5월이 되면 꺼내서 하루 이틀 짠 기를 빼고 쌀뜨물에 들기름을 넣고 푹 지져 먹는 꺼먹지라는 게 있다. 올겨울엔 시래기 많이 말리느라 꺼먹지까지는 못했는데 돌아오는 겨울에는 꺼먹지도 한 항아리 담가 날이 더워질 때 꺼내 먹어야겠다. 나이 드니 이런 짠지같이 오래된 반찬이 좋아진다. 사람도 음식도 은근히 오래 묵은 게 구수하고 소화가 잘된다.

 

 

 

* 시래기지짐

재료: 삶은 시래기 600그램

양념: 멸치 10마리, 다시마 10x10센티미터, 된장 3큰술, 대파 1, 마늘 1큰술, 들깨 가루 3큰술, 들기름 1큰술, 고추씨 1/2큰술(청양고추 1~2)

 

만들기

1. 삶은 시래기를 깨끗이 씻어 5센티미터 길이로 잘라 냄비에 넣는다.

2. 물을 넉넉히 붓고 멸치, 다시마, 된장을 풀어 넣고 중약불에서 40분 정도 푹 끓인다.

3. , 마늘, 고추씨(고추), 들깨 가루 넣고 잘 섞어서 다시 한소끔 끓인다.

 그림_ 이동수


* 시래기밥

재료: 삶은 시래기 200그램, 3

양념: 된장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들기름 1큰술,

국간장 1큰술

양념장: 간장 2큰술, 2큰술, 다진미나리 2큰술, 고춧가루 1작은술, 들기름 1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만들기

1. 쌀 위에 양념에 무친 시래기를 올려서 밥을 짓는다.

2. 뜸을 잘 들이고 풀 때 고루 섞는다.

3. 양념장과 곁들인다.

 

 

* 시래기전

재료: 삶은 시래기 200그램, 통밀가루 2, 11/2, 통들깨 3큰술

양념: 국간장 1큰술, 들기름 1큰술

 

만들기

1. 삶은 시래기는 종종 썰어 밑간을 한다.(국간장 1큰술, 들기름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2. 밀가루에 물과 통들깨, 국간장과 들기름을 넣고 부침개 반죽을 고루 섞은 다음 밑간한 시래기를 넣고 고루 섞는다.

3. 식용유와 들기름을 반반 섞은 기름을 팬에 두르고 한 장씩 노릇하게 지져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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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1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남편이 나갔다. 만세!

최해옥/ 전업주부

 

 

나는 결혼 29년차 주부. 남편은 시사만화가다. 삼 년 전 이사를 하면서 우리 부부는 별거를 시작했다. 사이가 나빠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집을 한 채 구하고도 돈이 남았기 때문이다. 재개발 예정 지역의 단독 주택은 허름하지만 제법 널찍하고 가격이 몹시 쌌다. 덕분에 남편은 독립된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남편은 활자 중독증이 있다. 그것도 중증이다. 책은 물론 글자가 쓰인 모든 종이를 허투루 하지 못한다. 이 세상 온갖 만물, 그중에서도 책과 종이들은 만화 작업에 매우 중요하고도 꼭 필요한 자료라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다. 따라서 그의 손에 들어온 물건 중 버릴 것은 없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종이 신문이 다양한 정보의 원천이었다. 우리 집에는 신문이 늘 1미터 넘게 쌓여 있었다. 스크랩을 한다고 모아 두었지만 신문이 쌓이는 속도는 정리 속도를 추월했다. 좁은 집에 탑처럼 솟아 있던 신문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져 내렸다. 참다못해 그의 외출을 틈타 몰래 갖다 버리면 어김없이 큰소리가 났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남편은, 안방을 작업실로 썼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책과 종이뭉치가 가득해서 안방에 있던 장롱에는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거실도 사정은 비슷했다. 풀지도 못한 박스 더미가 빼곡해 좁고 긴 통로만 남았다. 방이 세 개인 집에서 남편과 아들, 딸이 방을 하나씩 사용하고, 내 공간은 부엌과 통로만 남은 거실이 되었다. 베란다에도 책이 쌓여 있었다. 짐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짐 사이에서 잠들 때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짐을 모시고 사는 모양새였지만 버릴 수가 없었다. 말을 꺼내기만 하면 남편이 화를 냈기 때문이다.

그림_ 이동수(시사만화가)


이렇게 살다가 이사를 하면서 대부분의 짐과 함께 남편이 분가해 나가자 마침내 내게도 공간이 생겼다. 나는 가장 넓은 안방을 혼자 차지하게 되었다. 만세!

남편의 작업실은 걸어서 3, 4분 거리에 있지만 난 드나들지 않는다. 이사 직후에 가 봤더니 마치 담배 연기로 결계를 친 듯 숨이 막혀 현관문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같이 살 때는 방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던 남편이 이제는 마음 놓고 담배를 피워 댄 탓이다. 몸의 건강에는 안 좋겠지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정신 건강에는 좋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밥은 같이 먹지만 잠은 따로 잔다. 밤에는 깨어 있기 일쑤라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는 남편과 그렇지 않은 나는 생활 리듬이 아예 다르다. 마치 작업장에서 2교대를 하는 것처럼 내가 일어나면 그가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려니 하다가도 오후 두세 시까지 자고 있는 남편을 보면 가끔 가슴이 답답했는데 이제는 그럴 일도 없어졌다.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남편은 내가 한 음식을 잘 먹는다. 솜씨 없는 음식을 맛나게 먹어 주니 고마운 일이다. 가끔 그는 이런 말로 생색을 낸다.

반찬 투정 안 하고 주는 대로 잘 먹으니, 이 정도면 좋은 남편 아닌가?”

그런 거까지 하면 당신은 진작 소박맞았겠지.”

나도 상냥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꾸해 준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사람과 어떻게 살지? 하는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남편에게는 이 글에서 밝히지 않은 장점이 많고, 나에게는 말하지 않은 단점이 많다. 그런데도 그의 단점과 나의 장점만을 밝힌 것은 내가 펜을 쥐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글쓰는 자의 특권이 아니던가. 살아 보니 세상은 불공평하더라.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812월호

일터 탐방_ 삼성화재 애니카 사고조사 노동자

 

매우만족이 아니면 우린 끝이에요

정인열/ <작은책> 기자

 

 

삼성화재 애니카는 국내 자동차 보험 시장 점유율 1위다. 애니카에는 자동차 사고가 나면 즉시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사고조사 노동자들이 있다. 타 보험사는 위탁받은 정비 공업사 직원이 출동하지만 애니카만은 2009년부터 에이전트라 불리는 사고조사 전문 인력을 두고 출동시켰다. 사고조사 노동자들은 사고가 접수되면 고객과 통화 후 15분 내에 현장에 도착해 사건의 경위와 피해를 조사한다. 먼저 고객을 안심시키고 다친 곳이 있는지, 차량 상태는 어떤지, 사고는 어떻게 났는지, 차량 파손 부위, 고객의 요청, 고객 차와 상대 차의 주장, 블랙박스 확보 여부 등을 확인한다.

▲ 삼성화재 블로그에 소개 된 사고조사 에이전트 자료 화면.    사진_ 삼성화재 블로그 갈무리.


삼성화재의 자회사인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이하 애니카손사)이 설립한 전국 8개 센터에는 약 140여 명의 사고조사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각기 업무를 위탁받아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왔다. 애니카손사는 이들과 사고출동서비스 대행계약을 맺고 이들을 서비스 대행업체라 칭한다. 이들은 애니카 명함을 사용하고, 이들의 차량에는 애니카 로고가 새겨진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으며, 명찰에도 애니카 로고가 있고, 사번도 부여받았다. 임금은 출동 1건당 받는 수수료 23천 원이다.

애니카지부 노동자들의 명찰과 끈에 삼성화재 로고가 새겨져 있다.     작은책(정인열)


이 노동자들 80여 명이 지난 1023일 노동조합(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전국사무연대노동조합 삼성화재애니카지부, 이하 애니카지부)을 설립했다. 사고조사 노동자 박경재, 박성진, 정창연, 조상근, 진경균 씨를 만나 사연을 들었다.

이들의 휴대전화에는 삼성화재가 제공하는 전용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 출동이 접수되면 알림음이 울린다. 15분 내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사고가 많이 나는 곳 근처에 주차를 하고 겨울에는 지하주차장에서, 여름에는 그늘에서 대기한다. 시동은 꺼둔다. 기름값을 본인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통신비, 차량 관리비, 식대, 차량 외관의 애니카 로고까지 자기 부담이다. 4대보험도 없다. 한 달 유지비만 최소 80만 원에서 100만 원.

당직인 날은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17시간을 근무한다. 14시간을 쉬고 나면 다시 아침 10시부터 밤 9시까지 근무하고 또 당직을 선다. 쉬는 시간에도 고객으로부터 문의 전화가 오면 응대를 해야 한다. 밤에 자다가도 사고가 나면 출동해야 하기 때문에 24시간 대기나 마찬가지다. 박경재 씨가 11월에 주말, 휴일 구분 없이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평균 12.7시간을 근무해서 번 돈은 250만 원. 여기서 유지비를 빼고 나면 150만 원가량 남는다.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제가 지난달에 100건을 했어요. 하루도 안 쉬고. 예전에는 20일 일하고 100건 해서 350~400만 원을 받았어요.”

이들의 수입이 악화된 것은 2015년경부터. 회사는 노동자들의 서비스를 종합 평가해 등급을 매겨서 수수료를 차등 지급하는 등급 수수료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적용했다. ~마의 5개 등급으로 나누어 하위 등급은 수수료를 건당 2천 원~4천 원 차감하고 출동 우선권 배제 등의 불이익을 주었다. 우수 등급에는 2천 원~4천 원을 추가 지급했다. 등급을 매기기 위해 출동 대기 시간과 출동 소요 시간 외에 고객 만족도, 수용률(출동 수행률), 이관률(호출을 받았으나 출동을 못하는 경우 타 대행업체로 이관), 입고율(사고 차량을 협력 정비업체로 입고), 출동 후 2시간 내 전산 입력 여부 등도 평가했다. 하지만 등급이 하락하기는 아주 쉽고 상위 등급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한 건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등급이 하락됐어요. 고객 만족 평가도 매우만족’(100)이 아닌 만족’(75)을 하나라도 받으면 끝입니다.”

폭우로 인한 침수 차량이 발생해도 등급이 하락했다. 대부분 사고조사 노동자들의 노력과 관계없는 일들이었지만 등급은 낮아졌고 1등급에게만 콜이 몰렸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3, 4등급 직원이 있어도 1등급한테 콜이 갑니다. 1등급 입장에선 멀어도 출동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늦게 도착하면 또 등급 떨어지죠, 그렇다고 다른 직원에게 이관해도 등급 떨어지죠. 고객도 손해를 보는 거예요.”

2016년부터는 대인 수수료가 없어져 수입이 더 줄었다. 대인 수수료는 가급적 고객을 병원에 안 가게 하고, 수리 차량은 협력 정비업체로 입고하고, 수리 기간 동안 렌트카를 사용하지 않도록 유도했을 때 주어지는 인센티브였다. 그러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았다. 사고조사 노동자들은 심리적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어우~ 뒤에서 받았어요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거야. 이거 또 대인 발생되겠구나. 가면 이거 또 디메리트(불이익) 있겠구나 걱정하면서 현장 나가는데 그런 게 스트레스였어요.”

고객들의 폭언과 폭행 또한 스트레스였다. 모두 고객으로부터 욕설과 멱살은 기본, 폭행도 수차례 당했다고 답했다. 박성진 씨는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가 생겨 지난 8월부터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조상근 씨 역시 체중이 15킬로그램 감소했고 박경재 씨는 생체 리듬이 깨져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이 든다. 이들은 아파도 일을 쉴 수가 없다. 쉬는 날은 수입이 한 푼도 없기 때문이다. 다섯 명 모두 긴급 출동하거나 도로에서 사고조사를 하다가 다친 적이 있지만 회사로부터 병원비 한번 받아 본 적이 없다.

진경균 씨는 퇴직금 한 푼 못 받고 나가는 동료들이 안타까웠다. 뭔가 바꿔 보고 싶었다. 퇴직자들을 설득해 퇴직금 소송을 준비했다. 20177, 퇴직자 6명이 애니카손사를 상대로 법원에 퇴직금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823일 서울중앙지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맞다고 선고했다.)

퇴직금 소송이 시작되자 회사는 몇 가지 조치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그동안 사고조사 노동자들에게 약속했던 우선 출동권을 없앴다. 우선 출동권은 사고 발생 시 사고조사 노동자들이 타 공업사보다 우선적으로 출동할 수 있는 권리다. 이후 정창연 씨는 공업사와 비교해 공정하게 콜이 분배되지 않는 정황을 포착하고 20185월경 공업사 직원들과 전화기를 한자리에 모아 자체 테스트를 했다.

출동 건수가 너무 없으니 답답해서 테스트를 했어요. 출동 들어오는 순서를 봤더니 에이전트는 누락을 시키는 거죠. 공업사 먼저 다 나가고, 그 다음에 정 나갈 사람 없으면 에이전트한테 주는데, 만약 공업사 직원이 나갔다 들어오면 그 사람한테 다시 주는 거예요.”

조상근 씨도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공업사 직원과 실적을 비교했다. 지난 10월을 기준으로 조 씨는 하루 평균 2.3개를 처리한 반면 공업사 직원은 하루 평균 6건이었다.

애니카지부는 에이전트의 노동자성 인정 및 직접고용 논란을 피할 목적으로 회사가 우선 출동권을 없앴다고 보고 있다. 사고조사 노동자의 수입을 줄여 스스로 그만두게 한 후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게 하거나 정비 공업사로 이직시키기 위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5단계로 매겼던 등급수수료도 2018년부터 사라졌는데, 수시로 업무 지휘·감독을 했던 점을 인지하고 없앤 것으로 지부는 해석한다.

, 쓸개 다 빼놓고 일했는데 이제 와서는 직원이 아니라고 하니까 배신감이 드는 거죠.”

노동자들은 열악한 현장을 바꾸고 애니카손사 직원으로도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 회사에 직접고용과 출동 차량, 유류비, 보험료, 통신비 지급 및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3교대 근무 실시, 10년간 동결된 수수료 인상 및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과의 싸움은 특히 쉽지 않을 텐데 두려움은 없을까? 정창연 씨가 말한다.

주변에서 다들 말해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거라고. 그런데 저는요, 계란으로 바위가 더럽혀지는 거라도 봐야겠어요.”

삼성화재 애니카 사고조사 노동자 조상근, 진경균, 정창연, 박성진, 박경재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회사와 투쟁을 시작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프로다.

지금도 사고 현장에 나가면 당연히 고객은 내 가족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프로답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속상하고.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먼저 고객을 안심시키고 고객의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고조사 노동자들. 이제는 이들의 피땀이 보상받을 차례다.

posted by 작은책
2018. 12. 28. 10:55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고창수


발행인의 글

 

발행인 안건모입니다올 한 해는 제가 독자님들께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1월호이니만큼 <작은책꼭지 이야기부터 해야 되겠지요.

돌모루댁의 살림살이는 이번 호부터 요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로 쉽게 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이야기입니다저도 한 달에 한 번요리 열두 가지는 배워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귀촌해서 전북 장수군 번암면에서 살고 있는 조혜원 씨의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경기도 파주시에서 한의원을 꾸리고 있는 권해진 씨의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오앵이라는 고등학생이 그리는 만화 일상의 온도도 연재합니다.

이번 호 작은책이 만난 사람은 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 기자 박상규 씨입니다박상규 기자는 박준영 변호사신윤경 변호사와 함께 재심 3부작 프로젝트로 스토리 펀딩을 해서 재심을 이끌어 냅니다세 사건은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말합니다삼례익산두 사건의 범인은 모두 무죄로 판결납니다. 16, 17년 동안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었다는 말이지요완도 무기수 김신혜도 재심 판정을 받았습니다김신혜 씨는 현재 20년째 복역 중인데 재심을 받으면 무죄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오히려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경찰과 검찰은 승승장구해서 문재인 정권에서도 권력을 누리고 있다네요그런 자들을 끌어내릴 수는 없는 걸까요?

 

2018년 12월 20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세 여자를 만나다 강정민

10 엮은이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남편이 나갔다. 만세! 최해옥

15 처음으로 공개하는 내 일기 남다올

17 글쓰기로 우울증을 치료했다 김지영

22 “식사비 함께 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배정분

25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시래기 만찬 윤혜신

31 청년으로 살아가기

학생이 어떻게 이 시간에?” 묻지 마세요 문관영

36 이야기가 있는 사진 이기범

38 살아온 이야기(7)

당신 보호자는 누구입니까? 송추향

44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제가 병원비를 안 내거든요 권해진

47 교실 이야기

긴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법은? 조은영

51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산골 손님과 나 조혜원

56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60 일터 탐방_ 삼성화재 애니카 사고조사 노동자

매우만족이 아니면 우린 끝이에요 정인열

66 일터에서 온 소식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박승하

70 일터에서 온 소식

우리는 진실을 알아 버렸습니다 임동수

73 작은책 법률 상담소

담벼락을 허물지 마세요 양성우

 

작은책이 만난 사람_ 박상규

77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안건모

104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106 생각해 봅시다

그 몸으로 임신할 수 있니? 박지주

111 어린이 해방과 평화 새 천년 어린이 선언 이주영

118 여성으로 살아가기 매일 글 심는 사람 홍승은

123 생태 이야기 꿀벌의 단체 가출 박병상

128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쉬엄쉬엄 가요

130 책 읽고 딴 생각

왜 아이들이 차를 조심해야 하는가 변정수

133 독립영화 이야기

드라마틱한 다큐의 시작은 소박했다 류미례

138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놋그릇을 만들 때 쓰는 말들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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