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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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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18 그가 팬티만 입고 운전한 사연

<작은책> 2018년 10월호

일터 탐방_ 대경환경()

 

그가 팬티만 입고 운전한 사연

정인열/ <작은책> 기자

 

생활쓰레기(생활폐기물)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배성훈 씨(38). 그의 업무는 남들이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인 밤 930분에 시작된다. 서울 마포구의 각 가정과 상가 등에서 내놓는 생활폐기물(일반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폐기물)5톤 수거차량에 싣고 인근 소각장에 나른다. 운전기사 한 명과 쓰레기를 포집하는 미화원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손발을 맞춘다. 미화원은 운전기사보다 2~3시간 더 이른 저녁 7시경 각자 맡은 현장으로 출근해 골목의 쓰레기를 포집하고 수거차량이 다닐 수 있는 큰 도로가에 내놓는다. 그러면 운전기사는 포집된 쓰레기를 트럭에 상차하고 쓰레기는 회전판에 밀려 트럭 안쪽으로 들어간다.

▲ 서울 마포지역에서 폐기물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배성훈 씨. 작은책(정인열)


마포구에서만 하루 발생되는 생활폐기물의 양은 456.6(2016년 서울시 통계자료). 하루만 수거를 하지 않아도 악취가 나고 거리가 더러워지기 때문에 이들은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6일을 일하고 토요일만 쉰다. 법정공휴일은 물론 설, 추석에도 쓰레기를 치워야 하기 때문에 명절 중 하루는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인간관계가 다 작살났죠. 쉬는 날이 하루라 아무것도 못해요.”

그는 야간노동으로 파괴된 일상을 설명했다. 아침에 퇴근 후 잠을 자려고 해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기 때문에 항상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린다. 생활 패턴이 남들과 달라 지인들을 만날 수도 없어 사회적 인간관계는 단절된다. 배 씨는 작업을 하기에는 주간이 오히려 낫다고 주장한다.

수거차량 20대가 마포구 지역 교통체증을 유발할까요? 오히려 낮에는 도로에 불법주차 차량이 없어 작업도 원활하고 사고 위험도 낮죠.”

야간노동은 특히 가정에 어린아이가 있는 동료들을 힘들게 한다. 쉬는 토요일 낮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밤잠을 자게 되고, 일요일 낮에 다시 아이들과 놀아 주다 잠을 자지 못하고 바로 출근하는 일이 많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에 출근하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쉬는 게 아닌 쉬는 날을 보내고 현장으로 가면 치워야 할 쓰레기는 평소보다 2.

하루 쉬고 나온 날은 12~13시간을 작업해야 돼요. 평소보다 4시간씩은 오바가 된단 말이에요.”

▲ 대경환경(마포구 위탁 환경업체) 서복석 씨가 성산동 골목을 다니며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공공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마포구청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위탁업체 대경환경()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다. 위탁업체로는 고려환경, 평화환경, 효성환경까지 4개 업체가 있다. 이들의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410원 많은 7940. 기본급과 야간수당, 연장수당을 더하면 월 330만 원이다. 업체는 연장수당을 월 52시간으로 고정해 지급하고 있으나 배 씨가 6월 한 달간 노동조합 조합원 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장근로시간은 80시간이 넘었다. 배 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의 한 달 노동시간은 240시간이 넘는다. 이는 2016OECD가 발표한 회원국 평균 147시간보다 많은 최고 수치다.

간접고용의 문제점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자 20153개 관계부처(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고용노동부)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하 용역근로자보호지침)’을 마련하고 이들의 임금은 시중노임단가를 책정해 지급하도록 했다. 지침에 따르면 이들의 시급은 14766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중노임단가의 53퍼센트밖에 안 되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환경미화원이 이렇게 궁지에 내몰리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위탁업체가 공공업무를 대행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용역근로자보호지침을 내놔도 법적 강제성이 없어 지키지 않는 업체가 대다수다. 게다가 관리·감독을 해야 할 마포구청 청소행정과가 오히려 지침을 어기고 시중노임단가의 70퍼센트로 입찰 공고를 냈다. 그리고 관련법을 어기고 입찰 공고문을 변경해 노임단가를 더 내려서 업체가 연간 8억 원의 임금을 착복하게끔 도와준 정황도 있다.

위탁업체는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인건비와 식비마저 중간 착복하고 인력 충원도 최소화한다. 늘 인력이 부족하여 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기며 일을 하니 안전 규정도 어기게 된다. 골절부터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재해 건수는 연평균 613(2015~2017년 고용노동부 자료). 특히 사망자의 88퍼센트가 위탁업체 노동자였다. 배 씨 역시 지난 1월 쓰레기를 상차하다가 회전판 사이에 손이 끼어 오른쪽 손가락 3개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야간에 청소하는 사람들 다 발판에 매달려서 다니잖아요. 음주 차량이 뒤에서 받아 버리거나 발 잘못 디뎌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나도 매달려 다녀요. 발판 자체가 불법 부착물인데도요. ? 이걸 떼 버리고 걸어 다니면 작업시간이 당연히 늘어나겠죠. 그러니까 암묵적으로 놔두고 있는 거예요.”

배 씨는 미화원 작업복과 장갑을 지금보다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식물 쓰레기와 분뇨 등 오물을 처리하다 보면 작업복과 장갑은 온갖 세균과 미생물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 들면 구더기가 우두두둑 떨어져요. 그리고 술 취한 사람들이 꼭 쓰레기 더미 위에 토하고 오줌 싸고요. 그걸 수거차량에 넣으면 회전판이 돌면서 압축하거든요. 그런데 쓰레기가 가득 차면 터지면서 그 안에 있던 오폐수, 구더기 다 뒤집어쓰는 거예요. 저도 한번은 다 튀어서 입고 있던 옷 다 벗어서 버리고 팬티만 입고 운전했어요. 하하.”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2009년 실태조사에서도, 환경미화원의 몸에서 검출된 미생물 수가 버스터미널 화장실 변기의 25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이 가까이서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실은커녕 탈의실도 없어 주차장이나 상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작업 후에도 근처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을 씻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오폐물이 묻은 옷은 그대로 가정 세탁기로 들어가 그 가족의 위생마저 위협한다.

▲ 한 위탁 환경미화원이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집다가 유리 같은 날카로운 물건에 손이 베이는 일도 부지기수다. 얇은 코팅 장갑 한 켤레로 3일을 써야 하니 금방 헤진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안전수칙 가이드에서 베임방지 장갑을 착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현장에는 지급되지 않고 있다.

대경환경 야간 반장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미화원에게는 좋은 구역을, 그렇지 않은 미화원에게는 계속 험한 구역을 배치하며 인사권을 휘둘렀다. 때마침 4명 인력 충원으로 한 조가 더 생겨나 조금은 작업이 수월해질 거라 기대했지만 편한 사람만 더 편해질 뿐이었다. 201711월 배 씨를 비롯한 대경환경 소속 노동자 대부분은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노조를 만들었다. 배 씨는 지회장을 맡았다.

노조가 생기자 회사는 곧바로 같은 조의 노조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노조를 탈퇴하라고 회유했다. 노조에 가입한 수습 직원 4명은 3개월 수습 기간 후 모두 계약해지 하고 새 직원을 채용했다. 27명이던 노조원은 순식간에 22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8명이 버티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기업노조가 만들어져 22명이 그 노조에 가입했다.

배성훈 씨는 노조 활동을 하고부터 하루 세 시간도 못 자고 있다. 아침에 퇴근한 후 마포구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상급단체와 노무사를 만나 자문을 구하고 담당부서인 청소행정과에는 민원을 넣는다. 지난 828일에는 유동균 마포구청장과 면담해 위탁 환경미화원 직접고용 TFT 구성을 제안했다.

▲ 배성훈 씨가 폐기물 수거 작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작은책(안건모)


현재 서울시 직영미화원 1인당 책정된 인건비는 연 6300여만 원. 노조가 마포구청장에게 제안한 자료에 따르면 위탁 환경미화원 전원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임금 수준을 높여도 기존 위탁운영보다 연간 약 18억 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절감된 예산으로 각 업체에 41조 인력을 충원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되면 배 씨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보다 안전하게 일하면서 주 5일 근무도 꿈꿀 수 있게 된다.

위탁업체가 그동안 우리 뜯어먹은 거 그만하라는 거죠. 발판에 매달리지 않고 작업을 해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그는 오늘도 잠 못 자고 뛰어다닌다. 보통 사람들처럼 밤에 잠자고, 가족과 일상을 함께하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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