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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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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29 믹스커피 하나에 울음이 터졌다(작은책 2018년 12월호)

<작은책> 2018년 12월호

일터 탐방_ 손말이음센터

 

믹스커피 하나에 울음이 터졌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안녕하십니까. 손말이음센터 중계사 OOO입니다. 청각장애인분의 요청으로 대신 전화드렸습니다.”

▲ 청각·언어장애인과 수어로 통역하고 있는 통신중계사.             사진제공_손말이음센터지회


번 없이 107을 누르면 연결되는 한국정보화진흥원 손말이음센터는 청각·언어장애인(농아인)과 비장애인이 중계사를 통해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수어(수화언어)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전국 32만 농아인들이 음식 주문부터 금융기관, 관공서의 민원 상담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36524시간 운영되고 있다. 하루 평균 이용 건수는 2066(20171~10월 기준, 한국정보화진흥원 보도자료), 중계사 한 사람당 하루 평균 55건을 처리하고 있다(민경욱 의원실, 2017년 기준).

손말이음센터 중계사 김영수 씨(37)와 황소라 씨(31)를 문래동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노동조합(민주노총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 이하 지회) 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황 씨는 대학에서 수어통역학을 전공하고 20113월에 입사했다. 김영수 씨는 대학 졸업 후 200810월에 입사했다. 대다수 중계사들은 더 나은 통역을 위해 개인 시간을 할애해 농아인 교회를 다니거나 공부 모임을 하는 등 농아인들과 교류를 유지한다.

그러나 중계사들의 노력과 달리 이들의 처우는 너무나 열악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센터 설립 직후 민간위탁을 했기 때문이다. 제니엘, 인포데이타를 거쳐 2009년부터는 KT계열사인 KTcs가 위탁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동종업계 대비 중계는 10배 이상 많이 하고 근무 조건은 훨씬 열악한데도 급여는 30퍼센트 이상 낮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중계사들을 괴롭힌 문제는 서 아무개 전 센터장을 포함한 일부 팀장급 관리자들의 권력 남용과 부정 행위들이었다. 지회는 정부 기관들에 글을 올렸다. ‘서 전 센터장이 여성 중계사들 허벅지를 만지고 사적으로 접근하는 등 성추행을 했으며 시간외수당 조작 및 횡령, 연차휴가 및 병가 반려부터 화장실 이용 제재등 다양하고 사소한 방법으로 중계사들을 괴롭혔다는 내용이었다.

계속 통화하면 입이 너무 써요. 그래서 오후에 양치를 한 번 더 할 때도 있는데 걸리면 여자 팀장이 자리 비운다고 면담하고.”

서 전 센터장은 중계사들의 연차휴가 신청을 반려했다. 사유는 바쁠지도 몰라서’. 반면 자신에게 잘 보이는 중계사들은 연차휴가 사용과 업무 편의를 봐주었다. 많은 중계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지회에 따르면 센터 개소 이래 누적 퇴직자는 80퍼센트.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데, 해마다 이용자는 늘어 중계사 36명이 근무할 때 응대율이 54.4퍼센트(20185월 기준, 지회 자료). 이용자의 절반은 통화 연결이 안 돼 피해를 보고 중계사들은 화장실도 못 가며 중계를 받아야 했다. 중계사들의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한 때는 20158월 무교동 청사로 이전한 뒤부터다. 100센티미터의 좁은 책상에 갇힌 채 쉼 없이 중계를 받았다. 창문도 블라인드도 냉·난방 시설에도 손댈 수 없었다. 김영수 씨가 말한다.

하루는 출근해서 커피를 타려고 봤더니 믹스커피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 내가 100원짜리 믹스커피도 아까워할 만한 존재구나. 그분(서 전 센터장)이 평소에 프린트도 못하게 종이도 다 빼놓고 그랬거든요.”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자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은 201412월 전용 모바일 앱을 개발했다. 20141224, 성탄 전야로 거리가 떠들썩한 밤에 야간근무를 하던 황소라 씨는 한 중계 영상을 받았다. 한 남성 이용자가 자위 행위를 하는 음란 중계였다. 황 씨는 깜짝 놀라 울면서 책상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모바일 앱이나 PC 프로그램으로 접속할 때 실명 인증 절차나 휴대전화 번호 인증 절차가 없는 점을 악용한 성폭력이었다. 황 씨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말을 하는데 목소리를 떨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 김영수 씨(왼쪽)와 황소라 씨(오른쪽)가 설명하고 있다.                                  사진_안건모


그런데 화면을 꺼야 하는데그런데 화면을 봐야 끌 수 있잖아요.”

김영수 씨가 황소라 씨의 말을 끊었다.

소라가 이 일로 산재 요양 중이라 제가 얘기하는 게 좋겠어요. 작년 국정감사 준비하다가 멀리서 그 자료 화면을 봤거든요. 정말 그 정도인 줄 몰라서 꺼이꺼이 울었어요. 그리고 얘(황소라)한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소라가 인터뷰할 때 약 먹으면서 손 떨면서 얘기하는 거 저도 알았는데, 이 정도로 심한 장면인 줄은 몰랐어요.”

해당 음란 중계는 무려 6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성폭력이 계속됐다는 것은 KTcs와 서 전 센터장의 악의적인 방치로 볼 수밖에 없다. 서 전 센터장은 화면 캡쳐를 하라는 지시만 내렸다. 화면 캡쳐를 하려면 중계를 봐야 하는데 명백한 직무유기 및 2차 가해였다. (범인은 비장애인이었다.)

황소라 씨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노동조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KT새노조와 연락이 닿았다. 중계사 대다수가 노조 가입에 흔쾌히 동의해 20176월 노조를 설립하고 KT새노조 산하 조직으로 들어갔다. 황소라 씨는 지회장을 맡았다. 곧바로 KT와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센터 운영에 관한 감사 요청서를 보냈으나 반응이 없었다. 조합원들은 센터 건물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국정감사를 준비했다. 음란 중계와 센터장 성희롱 문제가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의 공감을 샀고 진흥원 이사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질타를 받았다. 그러자 센터에 변화가 일어났다.

음란 중계 때 신고 기능 신설, 모바일 앱 및 PC프로그램 실명 인증 회원제 도입, 2배 넓은 문래동 부지로 센터 이전, 서 전 센터장 격리 및 퇴출, 보다 자유로운 연차 휴가 사용 등.

▲ 손말이음센터 모바일 앱 이용 화면.                                 사진_한국정보화진흥원


문래동으로 이전할 때 진흥원 직원분이 직접 나오셨어요. 그동안 못 해 줘서 미안하다고 하시고. 이제는 회사 가는 게 너무 좋아요.”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지도과에서는 근골격계 질환 운동법도 안내해 주었다. 직무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중계사는 상담사를 연결해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201911일부로 전 직원이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정규 직원이 된다는 점이다.

런데 문제가 있다. 진흥원 본원이 대구에 있어 정규 직원이 되면 센터도 대구로 이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다수 중계사들은 퇴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지회는 수도권 잔류 기준 중 별도의 독립적인 업무’, ‘기타 지방 이전 시 업무수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업무조항을 들어 지금의 서울 센터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대구 센터를 신설해 응대율을 100퍼센트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설득 중이다.

중계사들의 임금은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동안 열악한 상황에서 중계사로 버텨 온 이유는 무엇일까? 황소라 씨가 말한다.

저희 센터를 통해 이용자분이 주체적으로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죠. ‘중계사 님, 손말이음센터 있어서 너무 편해요, 고마워요할 때 너무 좋아요. 그 사람들의 권리를 우리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으니까.”

김영수 씨는 이용자의 구직 중계를 예를 들며 말했다.

기업 측에서는 청각장애인이요? 우리는 어려운데하고 농아인은 면접 원해라고 표현해요. 짧은 네 글자지만 저는 그분의 간절함을 담아 기업 측에 면접이라도 한번 볼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하고 전달할 때 자긍심을 느껴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들의 얼굴이 무척 환하다. 황소라 씨가 말한 것처럼 중계사도 농아인에게 더 좋은 환경에서 도움을 주면서 잘 사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란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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