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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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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례감독'에 해당되는 글 2

  1. 2021.01.04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
  2. 2018.10.30 난 너의 야동이 아니야(독립영화 이야기)

<작은책> 202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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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이야기_ 당신은 거미를 본 적 있나요?, 보라보라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한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 되지만 어떤 풍경들은 변함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호의 영화들처럼요. 2021년의 1월의 영화는 특별히 두 편입니다.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23명이 출연하는 <당신은 거미를 본 적 있나요?>, 한국도로공사의 톨게이트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을 기록한 <보라보라>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독자들에게는 특별히 더 반가울 것 같습니다. 2020년 여러 영화제들에서 공개되어 다양한 반응들을 이끌어 냈는데 소개가 좀 늦었네요. 연말에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온라인 상영회가 있었고 귀한 영화들을 보고 나니 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들을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제목들이 멋지면서도 알쏭달쏭하지요? 첫 번째 영화를 만든 김상패 감독의 말로 제목의 의미를 대신합니다.

아사히 동지들, 용균이 어머니,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거미다. 이들이 하나의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로 엮어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

▲ 영화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한 장면.

▲ 영화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한 장면.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의 일상을 쫓아가는 영화는 직접고용 투쟁을 벌이던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교육 공무직 등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납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평등하지 않은 노동 현실을 고발합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자주 등장합니다. 김미숙 님은 비정규직이었던 아들의 사고로 투쟁에 나서면서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과 동지가 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김미숙 님은 고() 이한빛 씨 아버지 이용관 님, 그리고 정의당 의원들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제발 그만 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김미숙 님의 절규에 불평등한 현장에서 위험한 노동을 전담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른거립니다. 엔딩 크레딧에 이르게 되면 감독의 의도는 더 확실히 드러납니다. 김용균이라는 이름이 새겨졌던 화면이 점점 확대되면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하며 만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고 김용균 씨처럼 산재로 숨진 노동자들의 이름들로 화면이 가득 찹니다. 방금 만났던 영화 속 주인공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세상에 그토록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목이 멥니다.

▲ 영화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한 장면.


두 번째 영화 <보라보라>의 주인공들은 첫 번째 영화에도 잠깐 등장했던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입니다.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전환 고용을 거부해 해고됐던 1500명의 요금 수납원들의 이야기를 김도준, 김승화, 김미영 세 명의 감독이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고공농성 중인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겠어라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는 것만 같아요. 등장인물과 카메라 사이에 거리감이 전혀 안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곧 밝혀집니다. 바로 동료가 동료를 찍고 있었던 겁니다. 세 명의 연출자 중 김도준 감독은 영화과 학생이고 김승화 감독, 김미영 감독은 민주연합노조 조합원입니다. 김도준 감독이 다른 사안으로 광화문 집회에 갔다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캐노피 고공농성을 알고 밥을 올리는 도르래에 카메라를 올려서 촬영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캐노피 위 촬영을 맡은 김승화 감독이 촬영을 정말 잘했더라고요. 주인공들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이 찍는 것이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속내를 털어놓았고 그것을 담는 카메라는 무척이나 안정적이라서 그분들의 시간에 몰입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귀한 영화가 탄생했습니다. 투쟁하는 일상에서 시작한 영화는 투쟁의 방향성을 둘러싼 토론과 갈등을 보여 주다가 투쟁을 평가하고 기억을 공유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 영화 <보라보라> 한 장면.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건 조합원들이 들려주는 인생 이력이었어요. 산업체 학교를 다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다가 결국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저희 언니들이 떠올랐어요. 화장품이나 책의 외판 일로 시작해서 휴게소, 대리운전, 안마방 카운터까지 다양한 직업을 거쳐 현재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여성 노동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당신은 거미를 본 적 있나요?>의 주인공들도 투쟁 기간 중에 인생 이력을 들려주는데요, 그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분들의 이야기를 잘 모으면 불안정한 노동의 행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좋았던 건 갈라치기를 하는 자본의 계략을 호쾌한 웃음으로 비웃으며 비정규직을 남용하지 못하게, 모두가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꿈을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이었어요.

▲ 영화 <보라보라> 한 장면.

물론 이 영화에도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조합원들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토론하는 모습들이 참 좋았습니다. 영화과 학생으로서 편집을 전담했을 김도준 감독이 투쟁을 거치며 개개인의 의식이 성장하고 자연스럽게 갈등이 생겨난 것이다라는 말을 했던데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발전과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첫 번째 영화가 73, 두 번째 영화가 180분이에요. 그런데 영화를 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답니다. 이 영화들이 극장 개봉할 것 같지는 않아요.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에서 자리를 만들어서 영화를 보고 그 투쟁의 시간들을 되짚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랜선 상영회 희망합니다. (문의: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010-4644-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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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8년 11월호

쉬엄쉬엄 가요

독립영화 이야기_ 이선희 감독의 <얼굴, 그 맞은편>

 


난 너의 야동이 아니야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제 아들은 아주 특별합니다. 엄마니까 당연히 그렇게 느끼는 거겠지만 제 아들을 떠올릴 때마다 제 마음속에는 따뜻한 물 같은 것이 차오릅니다. 글을 모르던 시절,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 받아 적은 아들의 자기소개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나는 아빠의 귀를 닮았습니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눈물 많고 걱정 많은 자기의 마음이 엄마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기는 아들의 생각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아들은 아빠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합니다. 제가 앉아서 소변보기를 주장했을 때 순순히 따르는 아빠와는 달리 아들은 반발했습니다. 가끔은 엄마를 닮은 자기의 마음을 알고 있어서 더 강력한 남성성을 갖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들은 중2가 되었고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아들의 세계가 궁금해서 가끔 아들의 방에 들어가면 아들은 무심한 눈을 들어 ?” 하고 짧게 묻습니다. 선배 엄마들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런 반응에 상처받습니다. 여리고 고왔던 내 아들이 어느 순간 무서운 남자로 변해 있을까 봐 겁이 납니다.

이제는 같이 다니는 것도 반기지 않는 아들과 함께 제10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갔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일정이라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얼굴, 그 맞은편>을 보았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그리고 이 시기에 너무나도 적절하고 필요한 영화라 11월의 영화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 시기라고 표현하고 있는 지금은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추석이면 멋진 달리기 솜씨로 구사인볼트라는 애정 어린 별명까지 얻었던 씩씩한 여성 연예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비는 영상은 모든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사회적 성취가 충분한 그 여성을 무릎 꿇게 한 것은 최종범이라는 이름의 미용사가 연인이었던 시절에 함께 찍은 영상 때문이었지요. ‘폭행 사건으로 신고되었다가 성관계 동영상 협박논란으로 번지면서,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네티즌이 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동시에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 또한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여성주의자들은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 자체를 거부합니다. ‘리벤지를 한국어로 번역한 복수라는 단어는 억울한 피해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힌 가해자에게 보복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를 달고 불법 사이트들을 떠도는 영상들은 남성이 헤어진 연인에게 앙심을 품고 유포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그 영상에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을 붙이게 되면 영상 속 주인공 여성들이 잘못을 했다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알몸이 동의 없이 유포될 정도의 잘못을 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들은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르자고 합니다.

▲ 영화 <얼굴, 그 맞은편> 포스터.


영화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찍혔는지 모른 채 사이버공간에 유출되어 사회로부터 라는 낙인과 함께 격리되는 여성들의 공포를 고스란히 체감하게 해 줍니다. 여성의 이미지를 착취해 수익을 얻는 시스템이 산업화되고 있지만 국가는 거의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가 비어 있는 이 자리에 서서 피해 여성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젊은 여성들. <얼굴, 그 맞은편>의 주인공들입니다.

여성혐오페미니즘이 뜨거운 이슈가 된 지는 꽤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갈리아워마드가 등장했습니다. ‘미러링이니 폭력의 반사와 같은 단어들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이 제게는 버겁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 복잡한 지형을 페미니즘=폭력이라는 공식으로 단순화하고 페미니즘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간간히 대화를 하던 시절, “네가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어라는 제 바람을 들은 아들이 페미니스트가 뭔지 알아보겠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고 같은 부모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지만 삼 남매는 서로 다릅니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돈 많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거?”라고 물었던 선생에 대해 분노를 털어놓는 큰딸, 탈코르셋 운동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막내딸,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아들. 이런 상황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본 <얼굴, 그 맞은편>은 저희 가족에게 대화의 물꼬를 터 주었습니다.

주인공들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의 젊은 여성 활동가들입니다. 그들의 시작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누군가의 사적인 동영상. 불법 유출된 것이 분명한데도 그 영상은 다양한 이름을 걸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떠돕니다. 불법으로 다운로드를 한 사람이 제목을 바꿔서 다시 올립니다. 고작 몇백 원, 몇천 원에 누군가의 신체는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활동가들은 영상 속 약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고통을 지켜보며 흥분하고 희열하는 남성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거리부스를 운영하기 위해 안내 배너를 세우는데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실수를 연발하며 깔깔거리는 이들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어딘가에서는 악마화된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 페미니스트. 하지만 영화가 그려 내는 눈물 많고 공감 능력 풍부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성장기를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스르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수십 개의 이름으로 떠돌고 있는 불법 유출 동영상을 찾아서 신고하고 또 신고합니다. 같은 동영상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올라와 있기에 일일이 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지만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피해자들은 동영상 유포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를 해도 유포된 동영상을 다 막지 못해서 사비를 털어 디지털 장의사라는 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돈이 떨어질 때까지 지우고 또 지워도 막지 못한 피해자들 중의 일부는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더 절망스러운 것은 피해자의 불행이 알려지면 그 동영상은 더 인기를 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는 그만큼 충격적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불법 동영상 공유 사이트디지털 장의사라는 업체들의 협력관계가 의심된다는 사실입니다.

피해자들의 슬픔을 전시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진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던 이선희 감독은 활동가들이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활동가가 되어 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보는 일 자체가 투쟁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범죄 관련 기관이 법원에 영화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재판 기금 마련과 개봉을 위한 소셜펀딩이 진행 중입니다. 꼭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cybersv.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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