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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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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0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죽비 같은 인연

김수련/ 항공사 객실승무원

 

항공사 객실승무원으로 일하는 하루하루는 늘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하늘을 건너 온 세상 도시들을 오가며 다양한 국적의 승객들을 대하는 일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지구라는 열린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객실승무원으로 일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전혀 알지도 못했을 나라와 사람들, 그들에 대해 새로운 걸 깨닫고 이해하게 해 주는 내 일이 나는 너무나 고맙다. 피부색, 언어, 종교에 상관없이 이 시대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런 교감과 공감 덕분에 길고 고된 하늘길에서의 노동을 견디며 오랜 시간 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행기라는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밀폐와 제한이다. 이 꽉 막힌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다 보면, 그 부대낌의 피로 탓일까. 이미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던 상황들을 그만 새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극성수기가 지나고 나면 항공요금이 조금 싸진다. 휴가를 가는 여행객들은 줄어들고, 사업이나 고향 방문 목적의 승객들이 많아진다. 성수기가 끝났음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승무원들 앞에 또 다른 종류의 일이 들이닥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그래서 미국을 오가는 승객들 중에는 고국을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 특히 우리 항공사를 많이 이용하는 승객은 인도인이다.

인도처럼 식민지를 오래 겪은 나라들은 이민이 많다. 인도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로 계급간의 갈등이 꽤나 심각하며, 우리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지만 이름과 성만 보아도 그들끼리는 상대가 어떤 계급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신분이 낮은 이들은 자국기인 인디안항공 이용을 꺼리고 신분 계급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는 외국 항공사들을 애용한다는 것.

그 얘기를 처음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인도인 승객들을 만나면 무작정 연민의 마음부터 일곤 했다. 하지만 신분이 철저하게 구분된 사회에 오래 살았던 이들이라 그럴까.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행동으로 우리를 당혹하게 했다. 나의 연민과 공감 능력으로는 그들을 다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들 인도인 승객의 특징 중 하나는 타국적의 승객들에 비해 휠체어 신청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인천공항에서 인도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모인 인도인들이 한 비행기에서 주문한 휠체어가 무려 50개가 넘을 때도 있다. 휠체어 승객이 몇십 명이 넘어가면 승무원이 할 일은 몇 곱절로 늘어난다. 달리 보상이 없으면서 챙기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부쩍 많아지니, 일하는 승무원 입장에서는 불평이 쌓이기 십상이다.

휠체어로 탑승하는 인도인들은 물론 대부분 노약자들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충분히 걸어 다닐 나이 같은데도 제대로 못 걷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느 날 인도 뭄바이에서 현지 직원에게 물었다. 유독 많은 뭄바이행 휠체어 승객들에 대한 불평은 그 질문 하나로 자취를 감췄다.

직원은 답은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너무 가난하여 자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미국으로 간 그들. 그런데 어린 시절의 부실한 영양 공급 탓에 다리근육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고단한 노동에 시달리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자신을 챙길 여유가 없어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휠체어를 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그들. 휠체어에 의지해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들. 어쩌면 미국 이민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고향 방문일 수도 있는 그들의 여정.

그들을 그렇게 휠체어 안에 주저앉게 만든 사정을 헤아리려 들지도 않은 채, 그저 고단한 업무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으려 했던 내가 얼마나 낯 뜨거웠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할 일이 늘어나는구나, 더 고단해지겠구나, 아 힘들어, 그런 푸념만 연발하며 그 상황을 불편해하고 불평하다니.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늙고 병들어 혼자서는 잘 움직일 수도 없는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인 인도로 가는 모자 승객이 우리 비행기에 탔다. 어머니의 좌석은 비즈니스였고 아들은 이코노미였다. 아들은 탑승하며 내게 부탁했다. 자주 와서 어머니를 돌보고 싶으니 사정을 봐 달라고. 비행기는 클래스별로 좌석이 나눠져, 다른 칸의 승객이 상위 좌석으로 맘껏 다니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탑승 과정 중 보았던 아들의 표정과 태도에 감동받아 그날 담당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해 잠시 오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

그날도 승객이 많았던 날이라, 내 일이 한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 모자 승객이 자꾸 눈에 밟혀, 아들이 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고 화장실 방문을 돕는 모습을 틈틈이 지켜보았다. 할머니는 생각보다 자주 화장실을 가고 싶어 했고, 그에 따라 나도 부지런히 다른 칸으로 오가며 아들 승객을 불러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잠도 못자는 그 승객이 안쓰러워,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서울 도착할 때까지 내가 돌봐 드릴 테니, 아드님은 조금 쉬시라고. 할머니는 평소 잘 못 움직이신 탓에 몸이 불어 있었고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있어서 부축하고 화장실로 모셔 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를 도와드릴 때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깊이 감사하는 맘으로 다정하게 건네는 눈길. 비록 능숙한 영어는 아니지만 넌 참 좋은 사람이야를 연발하던 할머니의 목소리. 그런데 식사 때면 식욕이 없으신지 거의 안 드셔서 마음이 아팠다. 더 드시라며, 다른 거라도 챙겨 드릴까 여쭈었더니, 맙소사! 자꾸 먹고서 화장실을 자주 가면 아들과 당신을 힘들게 해서 안 된다는 게 아닌가. 마음이 풀썩 주저앉은 나는 더 권할 수도 없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모자 승객은 다른 일반 승객들이 다 내리길 기다린 후에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를 꼭 안아 드리며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또 만나자고 인사했다. 할머니가 허리춤의 쌈지를 뒤져 꼬깃꼬깃 접은 5달러 지폐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셨다. 승무원의 업무 특성상 팁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난 괜찮다며 사양했으나 할머니는 절대 돌려받지 않을 기세셨다. 옆에 있던 아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맙다 인사를 드리고 손을 꼭 잡았다.

동료들은 그날, “왜 굳이 나서서 할머니를 돌보느라 더 힘들게 일했냐며 나를 책망하듯 칭찬했다. 아들과 늙은 어머니가 서로를 살뜰히 돌보고 위하는 마음을 어찌 외면한단 말인가. 서로를 위하는 애틋한 마음은 고단함도 잊게 만든다.

나는 잘 몰랐다. 아니 안 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엄격한 신분사회, 오랜 영국 식민 지배를 겪은 나라, 미국 이민자로 살면서 자신의 권리주장에만 몰입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 사람들. 그들에 대한 편견만 쌓으며 내 업무의 어려움만 증폭시켜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만났던 모자 승객은 자꾸 편협해지려는 나를 번쩍 일깨워 준 죽비 같은 인연이었다. 한 국가와 사회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책도 뒤적이고 영화도 찾아보곤 하면서, 정작 그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들을 보는 일엔 게을렀던 게 아닐까.

지난달 광화문에서 열린 갑질격파 시민행동집회에서 나는 조합원의 편지로 발언대에 섰다. 항공기가 날아올라 움직이는 원리를 항공역학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난 항공기를 움직이는 진짜 힘은 항공기 안팎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협력과 조화에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뭄바이로 가는 모자 승객 같은 수많은 죽비 같은 인연들이 내게 그렇게 가르쳐 주었으니까. 그리고 난 그들과의 사연을 나의 세상 도서관 책장에서 항상 다시 꺼내 읽고 감동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니까

▲ 항공사 객실 승무원 김수련 씨. 사진제공_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posted by 작은책
대한항공 해고 노동자 류승택 씨
사진으로 보는 사람 이야기

안건모




류승택 씨는 대한항공 소속 김해공장에서 일하다 2005년 9월 14일 해고됐다. 해고 사유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터넷 언론 기사, 즉 민중의소리에 난 기사를 사내 홈피에 유포했다는 거 하나고, 또 하나는 제 개인 홈피에 회사 문서를 올렸다는 게 이유죠.”

문제가 된 민중의소리 기사는, 2005년 대한항공조종사 노조가 쟁의행위와 관련 준법투쟁을 위해 준비한 리본을, 사측이 ‘절도’한 사실을 보도한 기사이다. 회사는 그것이 회사의 기물이기 때문에 ‘수거해 간 거지 절도가 아니’라고 명예 훼손으로 고발까지 했다. 또 하나는 류 씨의 개인 홈페이지에 ‘대외비입니다’라는 제목의 글, 회사 인사 정책(C-Player, HR Bank 등) 관련 문서를 올렸다는 이유와 개인 홈페이지에 회사로고 무단 사용 및 회사 문서 무단 게재, 위규 사실 시정 상사 지시 불이행 등이다. ‘C-플레이어’는 회사가 ‘3년 동안 가장 일을 못하는 사람을 저 평가자로 분류하는 것이고, 'HR-뱅크'는 대기 발령을 말한다. 인간으로서 모멸감을 받아 스스로 나가게끔 하는 것이다.

“사내 게시판에 보면 조종사는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억지 파업이니 하는 온갖 걸 다 실어 놨거든요 그렇다면 왜 파업을 하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다른 직원들이 조종사노조를 비판하고 조선일보 기사를 퍼올렸듯이 저도 민중의소리 기사를 퍼 올린 거거든요.”

△ 2006년 1월, 단식 투쟁하는 류승택 씨 ⓒ 안건모


류승택 씨는 2005년 10월 5일에 서울로 올라와 해고자 동지회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일인시위를 하면서 법정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류승택 씨는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조정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판사가 정말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무조건 돈을 받고 정리하라는 거예요. 돈은 많이 받게 해 주겠다는 거예요. 난 못한다 했지요. 왜 심리도 안 해 보고 그렇게 판단하냐고 했지요.”

류승택 씨는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패소했다. 맨 처음 회사가 자신을 해고했던 이유는 2심에서는 아예 다뤄지지도 않았다. 류승택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류승택 씨는 경남 하동 골짜기에서 태어났다. 나무껍질 벗겨 먹고 살 정도로 어려운 할아버지 세대와 같은 삶을 살았다. 한반에 1, 2, 3학년이 같이 있는 분교를 다니다가 5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했다. 중학교 때 신문을 배달하기도 했다. 공고를 졸업하고 1989년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대한항공에 들어갔다고 부모님들은 기뻐했다.

류승택 씨는 군대 갔다 와서 복직해 2005년에 해고당하기 전까지 정말 평범하게 살았다. 1995년 회사가 3조 2교대라는 근무 제도를, 스윙 제도라는 맞교대 형태로 개악하려고 했다. 부산지부 대의원이나 조합원들의 의견은 전혀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조합원이었던 류승택 씨는 부당한 회사의 행태에 삭발까지 하면서 항의했다.

△ 대한항공 정문에서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고 있는 류승택 씨 ⓒ 안건모


“제가 좀 앞섰던 거 같아요. 정직 2개월 징계를 당했지요. 그때 이후로 지금껏 이렇게 살아오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안 해요. 오히려 빨리 알아야 할 걸 뒤늦게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년이면 해결된다고 믿었다. 아내한테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3년이 넘어서는 지리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류승택 씨는 가족들한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싸움은 개인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프고, 어머니는 아직도 새벽에 청소일 나가시는데, 힘들고 안타까운 거는 있지만 제가 어차피 시작한 일이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당한 싸움이기 때문에 그냥 멈춘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오히려 복직한 뒤에도 노조 민주화 같은 이 사업들은 고스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조정이 들어오더라도 누군가는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함께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놔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류승택 씨는, 자본의 탄압도 있지만 어용 노동조합의 행태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본들도 그 썩은 노조를 이용해야 노동자를 쉽게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대한항공 건물 전경 ⓒ 안건모


“단순한 해고자의 복직 문제가 아니라. 대한항공 노동자들이 새롭게 바로 서는 것은 주체가 서야 할 문제도 있지만 어용노조의 썩은 부분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노조가 변하는 계기가 되고 또 세상이 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흔히 말하는 우리 안의 적이 가장 무섭다는 말과 통하는 건지도 모른다. 마치 이명박을 찍어 준 사람들처럼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진보월간 <작은책> www.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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