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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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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4월호

일터 이야기 / 일터 탐방_ 태경산업


세 명이 조합원인 노조, 큰일합니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환갑을 바라보는 세 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검버섯과 깊게 팬 주름, 고단함이 밴 표정으로 그들은 긴 장화와 안전화를 신고 대구 성서공단(성서산업단지)을 다닌다. 이들의 일터인 태경산업()2016년 기준 당기순이익 약 7억 원, 이익잉여금 약 80억 원을 보유한 중소기업으로, 포클레인과 지게차 등 중장비에 들어가는 고무호스를 제조한다.

▲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고무호스 생산업체 태경산업(주) 작은책(정인열)


  ▲ 조재식 씨와 이병철 씨가 안전화와 고무장화를 신고 성서공단을 걷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젊은 친구들은 한 시간 일하고는 다 집에 가 버립니다.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이주노동자들은 힘들어도 참아야 하는 형편이라.”

이병철 씨와 조재식 씨가 작업 내용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한다. 이들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30분까지 종일 서서 일한다(작업 준비를 위해 아침 720분에 출근하지만 회사는 노동시간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고무호스 제조는 먼저 금속 형틀에 호스를 끼우고 솥에 넣어 150고열로 30분간 가열해 성형을 한다. 이 과정에서 금속 형틀로부터 고무를 분리하기 위해 이형제를 사용하는데, 고무 탈형 후에는 기름기 있는 이형제를 없애기 위해 세척제를 섞은 뜨거운 물에 깨끗이 씻어 내고 건조시켜야 한다. 고무호스 모양도 다양한 데다 기계 한 대에 호스 60~70개를 꽂아서 넣고 빼는 작업이 반복되고,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세척한 고무를 넣었다 빼는 작업도 반복된다. 세척파트에서 일하는 이 씨의 말이다.

박스를 하루에 700번 정도 넣었다 뺐다 합니다. 3분 타이머를 맞춰 놔서 끄집어내면 다시 넣고. 그러니까 마디마디 전부 손목 터널증후군이 생겼어요.”

성형파트에서 일하는 조 씨는 오른쪽 손과 팔 전체에 3도와 2도 화상을 입었다.

▲ 고무 성형 작업 중 고온에 화상을 입은 조재식 씨의 손. 작은책(정인열)


고무가 쪄 가지고 단단하니 잘 안 빠집니다. 모양도 구불구불, 형태가 다양해요. 두 사람이 붙어서 와이어() 같은 걸로 빼다 뜨거운 솥에 팔이 다 닿으니 화상 입는 건 일상이에요.”

가장 버티기 힘든 때는 여름이다.

여름에는 실내 온도가 45~50됩니다. 솥을 찌고 뜨거운 물을 사용하니까. 3월 말부터 덥기 시작해서 10월까지는 지옥생활이라고 보면 됩니다. 작업복이 땀으로 젖어서 물이 줄줄줄 떨어지고 몰골은 완전히 쥐새끼가 됩니다.”

냉방기기도 없다. 대형 가마솥 6개에서 나오는 열기를 이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형제와 고무가 가열되면서 악취가 발생하고, 뜨거운 물에 세척제와 이형제가 섞일 때도 악취가 난다. 특히 이형제에는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사용되는데, 노동자들은 이 증기를 그대로 들이마시기도 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작업환경을 측정하러 왔을 때 노동자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할 수가 없다.

사우나 들어가서 마스크 쓰라고 해 보세요. 숨쉬기가 힘들어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형제를 취급할 때는 실외에서 작업해야 하고 실내에서 작업할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한 국소 배기장치가 필요하다.

냄새도 아주 지독합니다.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데 세척한 물을 한 달, 두 달, 석 달을 계속 쓰니 머리가 아파 죽겠는 거예요. 나 도저히 이거 못 하겠다 하고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했습니다.”

회사는 폐수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오염수를 재사용했다. 이 씨는 제품 불량도 양심에 걸렸지만 악취 때문에 더 죽을 것 같았다. 하루 10시간을 휴게 시간도 없이 종일 서서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일해도 월급은 15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동료와 불만을 토로하다 사장실로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임금도 적고 이런 환경에서 일하기가 어렵다, 임금 좀 올려 주시오했더니 사장이 해 주겠다 카데요. 그런데 세월만 가고 안 해 주데요. 그래서 , 이거는 아이다생각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조 씨는 2공장에서 일을 했다. 지금은 2공장이 폐쇄됐지만 당시 김동열 대표이사는 2공장 노동자들에게 욕설과 막말을 일삼았다. 김 대표는 설립자인 김동찬 사장의 동생으로 조 씨를 비롯한 장년층 노동자들보다 한참 나이도 어렸다.

“‘어이, 이래 하라켔자나? 뭐 이씨~’ 욕하고. 김 대표 사촌동생도 있었어요. 더 어리니까 저희 아들뻘 정도 됐겠죠. 그 사람도 아이씨, 니 뭐 하는데?’ 이카는 식으로 말을 하고.”

무시당하고 천대받았던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는지 말을 하는 조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속상한 노동자들 5명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다 자연스럽게 노조를 추진하게 됐다.

노조 만들려면 우예되나 찾아봐라, 하는데 노조에 대해 아무도 몰라요. 그냥 하면 되겠지 싶어 가지고 인터넷 사이트 찾아보다 민주노총 성서공단노조로 안내받아 가입을 했어요.”

20142, 생산직 노동자 28명이 노조에 가입을 했고 성서공단노동조합 태경산업현장위원회를 만들어 투쟁 선포식도 했다. 그러나 며칠 뒤 대표이사를 비롯한 관리자들은 조합원들에게 탈퇴할 것을 회유하거나 강요했다. 거의 다 탈퇴하거나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전체 노동자 50여 명 중 조재식, 이병철, 박동숙 세 사람만이 노조원으로 남았다. 대표이사와 사장은 노동자들에게 노조원들과는 같이 대화도 술도 하지 말라며 탄압을 했다. 그리고 2017년 생산직 노동자 대부분의 고용계약을 도급업체 두 곳으로 변경했다. 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업무 내용과 처우는 기존과 같다. 노조는 이에 대해 노조 확산을 차단시키기 위해 도급업체를 들여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회사로부터 은밀한 제안도 받았다고 한다.

대표하고 사장이 그러데요. ‘직원들 돈 다 줄 필요 뭐 있노? 당신들이 힘들게 교섭해서 따 내는데. 그 돈 가지고 너희 서이 나눠 쓰면 안 되나?’ 노조 탈퇴한 사람들한테 섭섭한 마음에 그래 버릴까 하는 심정도 있었지만 또 사람이 막상 그렇게 몬 합니다.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아야지.”

3명밖에 안 되는 노조지만 이들이 이뤄 낸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첫째, 토요 근무를 폐기하고 유급 휴일로 바꾼 것, 둘째, 공장 내 설치된 감시용 CCTV 18대 중 6대 폐쇄, 셋째, 4회 상여금 규정 도입 및 임금 인상이다.

▲ 태경산업 및 대구지역 노동자들이 2017년 9월 CCTV 철거를 요구하며 공장 안에서 시위를 했다. 이후 CCTV 18대 중 6대가 철거되었다. 사진제공_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명절 때 사장이 기분 좋으면 20만 원 주고, 기분 나쁘면 10만 원 주고. 그러니까 명절 전날 사람들이 사장 눈치만 보고 있었죠. 노조 생기고 나서는 정기 상여금 30만 원씩 4번으로 늘렸어요. 임금 협상해서 기본급도 올리고.”

현장이 개선되자 비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마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당신 덕분에 우리 임금도 많이 오르고, CCTV도 그래 많이 있고 할 때 없애 주고 고맙다그리 말해 줄 때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4년 넘게 투쟁해 조금씩 현장을 개선하고 있지만 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인격적 대우다.

인간 대접은 받고 일해야죠. 전에는 우리 호칭이 !, 어이~!’ 카는 소리였어요. 지금은 ○○○ 씨 이름을 부르죠. 공단 식당 같은 데 가 보면 자기 혼자서 울분 토하는 사람들 꽤 보거든요?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참 안타깝죠.”

▲ 태경산업 노동자 이병철, 박동숙, 조재식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청년보다 육체는 늙었지만 정신은 더 끈질긴 사람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비굴해지지 않는 사람들. 최악의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사람다운 사람들이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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