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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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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29. 14:32 알림 / 엮은이의 글

좋은 소식 전해드립니다.

<작은책>이 문화체육관광부가 뽑은 '2021년도 우수콘텐츠잡지'에 선정되었습니다. 2018, 2019년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작은책이 계속 발간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독자님들, 필자님들 덕분입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1년 3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유령도시에서 사라지는 직원들

김금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롯데면세점노동조합 위원장

 

사라지는 직원들.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 인천공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2019년 1월 28일부로 인천공항 2터미널 롯데면세점 매장으로 발령받아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이고, 보통 하루 2교대로 근무한다. 인천 영종도에 6시 30분까지 도착하려면 적어도 새벽 4시쯤에 일어나 준비하고 나와야 한다. 그동안 나는 공항리무진을 이용하여 출근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공항 이용자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리무진도 멈추게 되었다. 리무진을 운전하던 기사분들은 어찌 되었을까. 코로나 이후 주변에서 직원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후 나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다닌다. 리무진을 타면 출퇴근 시간이 50분밖에(리무진 이용 시간만) 걸리지 않았는데 셔틀버스를 타면 거의 두 배의 시간이 걸리니 출퇴근은 더 힘들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 모습. ⓒ김금주

공항에는 식당, 카페, 서점, 편의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있는데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문을 연 식당은 점심시간이면 공항공사 직원들을 비롯하여 보안직원 등 그나마 아직 출근하는 직원들이 꽉 들어차 방역 차원의 거리두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직원 식당을 이용하거나 베이커리에서 빵이나 샐러드를 사서 휴게실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게 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아직 휴점하지 않은 매장 역시 매우 소수의 직원들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 혼자 계산하랴, 커피 내리랴 바쁘다. 커피 한 잔 사려 해도 시간이 꽤 걸리는 등 모든 것이 불편해졌다. 특히 매장들이 휴업을 하고 직원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매우 불안하다.

텅빈 인천공항 지하 1층 공항리무진 정류장 모습. ⓒ김금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직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공항을 청소하시는 청소노동자, 면세점에서 판매하던 판매노동자들이 그렇다. 그래도 면세점 판매노동자들 중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고용유지지원금도 받으면서 쉬고 있고, 특히 나같이 운 좋은 대규모 사업장의 정규직은 영업시간은 그대로 둔 채 노동자 개인이 주 3일, 주 4일로 근로시간만 단축하여 근무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구조조정과 같은 인위적인 인원 감축은 없다.

그러나 올해 들어 모두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내가 일하던 매장의 직원은 입점 브랜드 직원을 포함하여 하루 출근 인원이 대략 60~70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20여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거의 노동조합이 없는 영세 사업장의 직원들이다.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절반의 직원이 사라졌고 현재의 20여 명이 일터를 지키는 최소의 마지노선이 된 것이다.

직원을 해고하는 업체를 비난할 수도 없다. 출국객이 없어 판매되는 상품이 없으니 매출 관리, 재고 관리 할 일이 없으니 직원이 필요 없는 것이다. 판매 상품 중 건강식품, 초콜릿, 김치 등 유통기한이 있는 제품들은 전부 없애야 하는데, 그 손해도 업체에서 감수해야 한다. 상품 재고는 남아 있는데 직원을 다 해고해서 무인 매대가 존재하는 곳도 있다.

한 직원에게 물어봤다.

“몇 분이 그만둔 거예요?”

“나 혼자 남았어요. 한 달에 일주일만 출근해요. 그래도 감사한 일이죠. 그만둔 직원들은 회사에서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채용한다고 했어요.”

‘문서로 받아 두셨어요?’ 하고 물으려다 말았다. 올해 백신 접종을 하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는 있으나 여전히 국가 간 이동은 요원할 것 같고, 그 업체가 부도나지 않고 버티고 있어야 직원들이 다시 돌아오지 싶어, 내 질문이 부질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3층 출국장 여행사 카운터가 텅비어 있다. ⓒ김금주

뜨지 못하는 비행기들이 계류장에 빼곡히 서 있는 것도 매우 기괴한 모습이다. 공항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비행 전광판이 수시로 몇 페이지씩 넘어가는데 이제는 한눈에 볼 수 있다. 하루에 출항하는 비행 편은 스무 편 정도니까… 내가 근무하는 2터미널의 상황이 이 정도니 훨씬 더 많은 직원이 근무하던 1터미널의 직원들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인천공항 상황만 봐도 이 지경인데 국회나 정부에서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하여 선별이니 어쩌니 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코로나 이전 이맘때 겨울이면 검정 패딩을 입은 저승사자 같은 모습의 직원들 수백 명이 인천공항 3층 셔틀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겨울 찬바람이 부는 고요한 인천공항은 참으로 기괴한 느낌이다. 오히려 북적대는 저승사자들을 보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한 것을…

나는 오늘도 아무도 없는 유령도시로 끌려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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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년 3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벨이 울리면 1초 안에 받아라

강혜경/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 조합원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생소한 용어로 가득한 책들로 교육을 받고, 이해 안 되는 교육임에도 매일 시험을 치고, 긴장 가득한 첫 전화를 받은 지가 벌써 9년이 되어 간다. 선배 상담사와 동석을 하며 모르는 내용이 들어올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뮤트 키(고객에게 내 목소리가 안 들리게 하는 전화기 조작 버튼)를 누르던 신입이 이제는 동석 시 신입 상담사를 케어하는 코칭 선배가 되었고, 고객이 부과 제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며 언성을 높이면 긴장하고 울먹이던 신입이 이제는 고객을 진정시키고 고객에게 조정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는 능숙한 상담사가 되었다. 이 두 문장으로 설명 가능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과 노력이 있었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벨 울림 2초입니다. 1초로 관리하세요.’라는 채팅이 걸려 오면 손가락을 잠시도 전화기 버튼에서 뗄 수 없고, 통화 종료 후 후처리 1분이 넘었다는 메시지에는 지사 이관 건을 점심시간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통화가 5분을 넘어가면 초조해지고 7분을 넘어가면 팀장의 채팅이 들어올까 불안하다.

3개월에 한 번 분기별로 공단에서 시행하는 만족도 조사 기간은 상담사에게 더욱더 힘든 시기이다. 이 기간에는 “추후 만족도 설문조사 시 5점 매우 만족 부탁드립니다.”로 종료 인사를 통일해야 한다. 인사를 누락할 경우 감점이 되며 상담사의 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다음 날 출근하면 자리에 옐로카드가 붙어 있다. 옐로카드를 받고도 누락하면 ‘친절’이라는 완장을 차고서 출근 시간 누구나 오며 가며 볼 수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교육을 받았다. 5분 이상 대기한 고객들이 우리에게 겨우 연결되면 평균 2~3분 안에 만족을 시키고 바로 상담 종료를 해야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연결 대기 시간이 7~8분인 고객이 어찌 2~3분 상담에 만족할까. 그런 고객들에게는 “추후 만족도 설문조사 시 5점 매우 만족 부탁드립니다.”라는 필수 멘트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불만은 곧 상담사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며, 10~20분씩 욕을 듣고 멘탈이 너덜너덜하게 뜯겨도 이어지는 다음 전화는 벨소리 1초 안에 바로 받아 밝은 목소리로 “함께하는 건강보험 상담사”를 외쳐야 나의 등급은 유지된다.

납부 마감일이나 호주기(납부 마감일이 다가오는 주간)로 분류되는 기간은 화장실에 가는 시간도 팀장에게 보고하길 강요받고, 고객이 요청한 아웃바운드(전화를 거는 것)도 팀장의 허락이 떨어져야 가능하다. 분기별로 한 번 있는 공단 시험에는 도급 업체의 실적과 자존심이 걸린 터라 한 달에 다섯 번, 여섯 번 예비시험을 치르고 만점이 아닌 경우 재시험이 반복되며, 최종 공단 시험에서는 만점이 아닌 경우 소위 ‘역적’ 취급을 당한다. 콜이 미어터지는 현실과 코로나라는 상황까지 겹쳐 교육은 꿈도 꿀 수 없다. 중요한 제도 변경도 미어터지는 콜을 받는 도중 전체 쪽지로 받게 되고, 고객과의 상담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그 쪽지는 나의 머릿속에서 잊히기 일쑤다. 해당 공지를 숙지하지 못해 틀린 안내는 결국 민원으로 이어지고 관리자들은 쪽지를 숙지하지 못한 상담사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1월 27일 총파업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사진 제공_ 노동과세계

흔히 콜센터 직원을 감정노동자로 일컫는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게, 혹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일하는 사람을 말하지만 건강보험공단 콜센터에 다년간 근무하면서 내가 느낀 바는 다르다. 우리는 노동자가 아닌 기계이다. 감정을 느끼면 버틸 수 없다. 슬퍼도 안 되고 화가 나도 안 된다. 고객의 고성과 욕지거리를 들어도 “네~ 고객님 말씀 이해합니다.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도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멘트가 자동응답처럼 튀어나와야 버틸 수 있다. 고객들의 불만에도, 도급 업체의 비인간적인 대우에도, 공단의 무시에도 아파하면 버틸 수 없다. 9년 가까운 근무 기간에도 내가 아는 동료가 몇 안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신입 동석을 하면 다음 날 그만두고, 팀 배정을 받으면 다음 날 그만두고, 부과 변동 시즌이 되면 그만둔다. 공단의 전산 오류나 문자 오발송으로, 잘못된 안내문으로 노발대발하는 고객들의 ‘총알받이’가 반복되면 그만두기도 한다.

얼마 전 받은 민원 중에 공단의 전산 오류로 인해 몇 년 전 이혼한 전남편의 피부양자로 등재된 고객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남편의 폭력과 집착을 피해 개명까지 하고 겨우 숨어 사는데 공단의 실수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과 정신적 피해를 겪었다며 법적 고소를 예고하는 전화였다. 순간 늘 기계같이 전화를 받던 나도 등줄기에 땀이 나고 공단의 실수가 한 고객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공포나 악몽이 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 이러한 심각한 민원에도 콜 타임이 길어지면 최대한 빨리 종료하라고 압박을 받는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드라마의 명대사처럼 이런 우리에게도 노동조합이라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기계라고 생각한 나에게 노동자 혹은 동지라 불러 주었고 우리의 노동이 가치 있는 것임을 알려 주었다. 차별 없는 삶의 가치를 교육받았고 투쟁의 가치도 알게 되었다. 그 가치 있는 교육으로 인해 이뤄 낸 것은 벨소리 1초가 아닌 2초, 휴식 없는 노동이 아닌 오전 10분과 오후 10분의 휴식이다. 또 공단의 형식적인 업무 시험에서 벗어났으며 팀장의 허락 없이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자유와 정해진 업무 시간 외 추가 업무 시 연장근로수당을 받게 된 것이다. 누군가에겐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권리이겠지만 기계였던 우리에겐 노동자가 된 후 이뤄 낸 투쟁의 결과이다.

2월 5일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직영화 쟁취 결의 대회에 참가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오늘은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창립 후 처음 갖게 된 총파업 첫째 날이다. 처음 가 본 건강보험공단 원주본부에서 투쟁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우리의 목소리가 정말 불공정을 야기하는 것인가? 지금과 같은 업무를 하되, 도급 업체의 실적 제일주의와 비인간적 관리에서 벗어나 공단에서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고용을 보장하고, 관리 감독과 교육을 해 달라는 것이다.

1577-1000번에 전화하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이니 욕설과 언어폭력은 지양해 달라는 멘트가 나온다는 고객들의 말을 들었다. 대기 시간 동안 화가 났지만 그 멘트를 들으니 상담사에게 화를 낼 수 없다는 고객도 있었다. 누군가의 엄마, 딸, 동생…. 이런 인간적인 환경에서 근무하고 싶지만 지금의 업체 간 경쟁 구도 속에서는 요원한 현실이기도 하다. 싫으면 때려치워”라는 말도 듣지만 그렇게 해서 도망치면 변화는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 자리를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다. 적어도 지금껏 건강보험공단을 대표해 고객 최접점에서 “함께하는 건강보험 상담사”라고 외쳐 온 나의 상담이 헛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월 5일 결의 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현수막에 결의 문구를 쓰고 중앙 무대로 전달하고 있다.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 국민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는 지난 2월 25일부터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 복귀해 현장에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_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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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년 3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연대의 힘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순예/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엘지트윈타워분회 소속 청소노동자

 

저는 청소일을 늦게 시작했어요. 다른 일은 안 하다가 오십이 넘어 엘지트윈타워에서 처음으로 청소일을 시작했으니까요. 사십이 넘은 나이에 늦둥이를 낳아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야간에 일을 시작했어요. 낮에는 아이를 봐야 하기에 주간에 하는 일은 좀 힘들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청소일이 올해로 13년이 되었어요.

제가 하는 주된 업무는 사무실 카펫 바닥의 먼지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일이었어요. 2층에서 20층까지 매일 밤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했어요. 쉬는 시간은 중간에 2시간 30분 있었고요. 다 힘들지만 특히 청소기가 상당히 무거웠어요. 사무실 전체를 해야 하기에 전깃줄은 30미터가 넘고요, 한 층을 청소하고 나면 전깃줄을 접는 일을 스무 번 반복해야 했기에 일이 끝나면 팔에 마비가 오고, 겨드랑이에 멍울이 생길 정도였어요. 아침에 일 마치고 집에 가면 아이 밥을 못 해 줄 정도로 힘든 일이었어요. 청소기로 직원들 책상 아래 공간 사이사이까지 청소를 해야 했기에, 고개를 숙이는 동작을 반복해서 목이 아파 병원을 많이 갔어요. 병원에 가면 의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고 계속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고도 했어요. 그러나 아이를 키우고 먹고살아야 해서 그만두지 못하고 십 년이 넘도록 했어요. 이번에 농성하면서 길벗한의사회에서 한의 진료 나오신 한의사 선생님이 침이 안 들어갈 정도라고 걱정했을 정도였어요.

엘지트윈타워 로비에서 선전전하는 이순예 씨. 사진 제공_ 엘지트윈타워분회

또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한 시간씩 더 일찍 나와서 추가로 회장실 청소를 했어요. 이걸 대기라고 부르는데, 1시간 더 벌기 위해 실제로 1시간 30분 이상 일찍 나왔어요. 회장실 청소 시작은 1분이라도 늦으면 안 되었거든요. 대기를 하면 저녁을 못 먹고 나오기 때문에 식대를 4000원씩 줬는데, 3년 전부터는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식대도 주지 않았어요. 소장, 감독에게 이야기했지만 아무런 해결책도 없었고, 나 몰라라 했어요. 그래서 간식을 싸 와서 먹었죠. 싸 온 간식을 쉬는 시간인 밤 12시에 대기실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스무 살이나 어린 젊은 여성 감독은 본인이 자는 데 방해된다며 못 먹게 했어요.

이런 갑질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감독은 수시로 1~2만 원씩 거출하여 과일이나 간식을 사서 전체 노동자들이 나눠 먹고 남은 돈은 본인이 챙겼어요. 그러던 중 2019년 7월에는 야간 노동자 24명에게 2만 원씩 걷어 총 48만 원을 저에게 맡겼어요. 그 돈으로 매일같이 저녁 출근길에 간식을 사 와서 씻고 깎아서 24명에게 나눠 주라고 했어요. 그렇게 한 달 보름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수박같이 무거운 과일을 사 오라고 해서 남편과 아들이 차로 실어 주기도 했어요. 그러다 감독이 간식비를 달라고 하여 주었더니 그 돈은 본인이 챙겨 버리더군요. 너무 힘들고 비참해서 감독에게 대들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재계약이 안 될까 봐 참고 견뎠어요. 막내가 아직 학교를 졸업하지 않아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8년 정도 조장을 했는데, 전체가 모인 출근 미팅 때 갑자기 조장 수당 5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지금 돈이 없으니 내일 주겠다고 했으나, 당장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에 동료들에게 빌려서 줬어요. 아무리 감독이지만 동료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이런 수모를 겪으니 너무 비참했어요. 용역,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갑질이 있어도 고용불안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기에 부당한 처우를 참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2019년 12월 야간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감독의 갑질과 타 건물로 전환 배치를 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실제로 트윈타워 동관은 2020년부터 다른 업체로 용역 계약이 되어 동관 노동자들 중 7명은 엘지 다른 건물로 보내지기도 했어요. 이들은 일 년도 못 버티고 그만두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야간조보다 조금 빠른 10월 말에 가입한 주간조 노동자들과 함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엘지트윈타워분회 조합원이 되었어요.

엘지트윈타워 로비에서 파업 집회 중인 청소 노동자들. 사진 제공_ 엘지트윈타워분회

우리는 트윈타워에서 있는 9시간 중 쉬는 시간을 많이 잡아 실제 돈을 받는 시간은 6시간 30분밖에 안 되었는데, 노조 만들고는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고 돈 받는 시간은 7시간이 되었어요. 주간조는 점심시간을 많이 줘서 하루 7시간 30분밖에 돈을 못 받고, 토요일에 격주로 나와 무급으로 일했는데, 노조 만들고는 하루 8시간 돈을 받고, 토요일에는 안 나가게 되었어요.

조금씩 좋아지고 갑질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있는데 교섭에는 회사가 불성실했어요. 청소노동자들을 함부로 부려 먹지 못하니까 그게 싫었나 봐요. 그러다가 갑자기 용역업체를 계약 해지하고 전원을 해고했어요. 우리는 작년 12월 한 달 동안 고용승계하라고 외쳤지만 엘지는 결국 외면했어요. 새해 첫날에는 밥과 전기도 끊고,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했죠. 그런데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여론이 나빠지자 다음 날 밥과 전기가 들어왔어요. 파업 전부터도 그랬지만 연대의 힘을 절감한 순간이었어요. 우리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회사는 위로금으로 회유하고, 다른 사업장에 취업시켜 준다고 사탕발림하지만 우리는 절대 흔들리지 않아요. 해고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 명도 흔들리지 않고 있어요. 청소노동자 무시하는 엘지의 버릇을 고치고, 우리의 일자리 트윈타워로 반드시 돌아갈 거예요.

파업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사회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현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 가진 자들이 약자들끼리 싸우게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이번에 연대의 중요성을 너무 뼈저리게 느꼈어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온갖 응원이, 물품과 메시지가 오는데 우리도 앞으로 갚으며 살자고 다짐했어요. 우리가 사회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많이 배웠어요. 가족들도 처음에는 걱정하다가 이제는 응원하고 있고요. 반드시 이겨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노동조합으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거예요.

(구술 정리_ 손승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

posted by 작은책
2021. 3. 8. 12:02 알림 / 엮은이의 글

* 3월호 배송 지연 안내

 - 3월호를 지난 2월 26일 일반 우편으로 발송하였습니다. 아직(3월 8일 기준) 책이 안 왔다는 독자님들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관할 우체국에 문의한 결과 우편 물량이 폭주하여 전국 우체국들도 집배 지연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3월 9일까지는 대부분 배송이 될 거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책을 못 받은 독자님들은 <작은책>으로 연락주시면 재발송하겠습니다. 많이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엮은이의 글

몇 년 새 우리 시대의 참 어른들이 잇따라 우리 곁을 떠나가십니다. 3월호 마감 중에 백기완 선생님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늘 낮고 작고 힘없는 이들 곁에 서서 함께 싸워 주신 선생님. 오래전 작은책 강좌에 오셔서 세상을 바꾸는 올바른 꿈과 사상을 일러 주셨어요. <작은책> 정신과 맞닿은 ‘노나메기’. “너도 나도 더불어 일하며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셨지요. 그 말씀 따라 <작은책>도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이번 달 일터에서 온 소식은 네 편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인천공항 면세점 노동자들 이야기, 가족 사랑을 실천한다는 대기업 마트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 고객들의 욕설에 ‘멘탈이 너덜너덜해져도 전화벨이 울리면 1초 안에 받아 밝은 목소리로 응대’해야 하는 건강보험공단 상담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십이 넘어 청소일을 시작했다는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이순예 씨의 구술은 마음을 찡하게 울립니다. “우리의 일자리로 돌아갈래요.”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지하철 역사마다 엘지 불매 포스터를 붙이고 있답니다.

“청소노동자 쫓아내면 엘지 제품도 쫓겨나요!”

독자님~. 지하철역에서 이런 포스터를 보면 아직도 힘들게 싸우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이분들이 일터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엘지 제품 불매로 함께해 주세요.

2021년 2월 17일 유이분 올림

 

목차

4 안건모의 사람여행

바다 출근길이 설레는 부부 어부 안건모

30 엮은이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28 엄마는 사랑이 참 많았어요 이임순

32 계약서를 쓰는 데 12년 걸렸다 심연

36 깃벘던 일, 아버지의 공책 신혜정

40 안녕, 나 별거하기로 했어 구본희

45 살아온 이야기(3)

돈에 관한 혼돈 속으로(3) 최현숙

51 나는야 뉴욕의 무료 변호사

의뢰인들이 나를 위해 울어 주었다 남수경

55 우리 동네 주치의

범인은 돈가스인가, 생굴인가 추혜인

59 요즘 중딩 교실 이야기

학교는 교육 기관인가, 보육 기관인가 안정선

64 남해 바다 어촌 일기

보물섬 남해 황은주

68 제소라의 아는 여자

꽃보다 ‘유정수’ 제소라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72 유령도시에서 사라지는 직원들 김금주

76 ‘가족 사랑 실천’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고광진

80 벨이 울리면 1초 안에 받아라 강혜경

86 연대의 힘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순예

92 작은책 법률 상담소

보이스 피싱 피해금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을까 양성우

96 작은책 노동 상담소

너 출입국 사무소에 신고할 거야 박공식

 

100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02 낮은 곳, 나의 자리로

입은 하나, 귀는 둘 홍세화

106 공공의료 이야기

귀한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의료 문정주

112 희망의 경제학

교육은 왜 이렇게 됐을까? 정태인

118 생태 이야기

과학이 내일을 위기에서 구하려면 박병상

124 존버 씨의 시간들

알고리즘이 감시하는 세계 김영선

 

쉬엄쉬엄 가요

1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132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자의 정숙한 몸가짐, 중요합니다! 김현진

136 독립영화 이야기 내 이야기 들어 볼래? 류미례

142 조재도의 시 읽기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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