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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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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7년 1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단 두 번의 기회

 

조숙현/ 28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 아줌마

 

작은 아들이 1997년 생입니다. 아이는 칸킨트(Kann kind)라고, 어리지만 충분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판정을 받아 만6세가 되기 전에 입학을 했습니다. 독일은 보통 초등학교가 4년제입니다. 6년제인 주도 있긴 있어요. 독일은 4학년 1학기 때의 성적으로 아이의 다음 진로가 결정됩니다. 김나지움을 갈지 레알슐레를 갈지. 성적이 안 되는 아이들은 하우프트슐레를 갑니다. ! 지금은 하우프트슐레가 6개 주에만 있어요.

김나지움은 G8G9가 있어요. 816학기에 끝나고 918학기에 끝이 납니다. 전에는 모두 13학년까지 다니는 G9였는데 지금은 G8로 전환하는 김나지움이 꽤 생겼네요. 짧아진 학기를 마치려니 아이들은 성적표에 더 신경을 써야 해서 과외도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 학원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주변에 점점 과외 학습원이 늘어나네요. 과외 비용은 시간당 8.50유로(한화11,000) 정도부터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 비하면 저렴하지요?

우리 아이는 바덴 뷔텐베르크(baden wütenberg)주의 레알슐레(실과학교)를 다녔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레알슐레를 가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들어간 학교니까, 1년 정도 레알슐레를 다니고 성적이 유지된다면 김나지움으로 바꿔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지요. 아이는 학교에서 관심 있는 분야를 열심히 배워 곧잘 1점을 받았습니다. 독일은 1점이 한국의 에 해당하고 6점이 입니다.

10학년을 좋은 성적으로 마치고 김나지움으로 옮기려던 아이가 직업학교를 가겠다고 했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제게 면담을 요청했고 아이와 저, 담임 이렇게 3자 면담을 했습니다. 독일 학교는 보통 이렇게 3자 면담을 합니다. 아이는 선생님과 제게 직업학교를 가는 게 왜 잘못됐냐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아파서 더 이상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 수도 있는데 대학을 가서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그때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목수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직업학교에 갔습니다. 17살이 안 된 아이가 자신을 받아 줄 회사를 찾아다니며 자기소개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드디어 한 회사에 합격을 한 후에 계약서를 갖고 직업학교 등록을 했습니다.

(독일의 직업훈련 ©picture alliance / dpa)


직업학교는 3년제입니다. 직업훈련과 병행됩니다. 직업교육 첫해에는 주 4일을 학교를 가는데, 3일은 실습 교육을 받고 1일은 이론 교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도제 교육을 계약한 회사에 가서 견습공을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은 무보수입니다. 아이의 사장님은 열정 페이주의자였는지, 보통 다른 회사는 견습공에게 130유로 정도의 식비를 제공하는데, 그 사장님은 정말 1유로도 주지 않더군요. 더구나 미성년자인 아이에게 주말에 도와 달라며 일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독일에서는 미성년자에게 주말에 일을 시키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수영장에 가는데 아이는 땡볕에서 수영장 벽을 수리했습니다. 찬물 한 잔 안 주더라고 불평을 하더군요.

2년째는 반에서 학생들이 걸러졌습니다. 성적과 자질이 없는 학생들은 제적되고 20명이 남았습니다. 2년 차는 7일을 회사에 가서 견습공을 합니다. 그리고 3일 수업을 받습니다. 그중 1.5일은 실습, 1.5일은 이론 수업을 받습니다. 7일 계속 일, 3일 수업 이렇게 로테이션이 됩니다. 그리고 세후 520유로(한화 67만 원)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간 작품을 제출했습니다. 3년 차에도 7일 회사, 3일 수업, 7일 회사, 3일 수업입니다. 그리고 세후 570유로를 받았습니다. 독일에서 목수 견습생은 월급이 다른 직종에 비해 많이 적습니다. 하지만 3년의 도제 교육이 끝나고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다른 직종보다 전망도 좋고 월급도 많이 받습니다. 견습 생활이 좀 많이 피곤한 직업입니다. 특히 제 아들처럼 1센트까지 다 따지는 사장을 만나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는 중간에 회사를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회사는 다른 회사에 없는 CNC 기계가 있었기에 끝까지 견뎌 냈습니다.

20세 목수 조슈아가 만든 가구. 그는 17세 전에 직업학교로 진학, 3년간 견습과 자격시험을 거쳐 목수가 되었다 (사진제공_조숙현)


2년 차에 아이는 학교 최연소로 CNC 기계 시험을 봤고 합격을 했습니다. 3년 차에 목수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반에서 16명이 합격했습니다. 목수 자격증 시험은 졸업시험 같은 것입니다. 이론 시험을 본 후에 작품을 제출해서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를 받습니다. 작품 제작 시에 그동안 배운 기술을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계 사용을 못하게 합니다. 도구를 사용해 손으로 직접 만들지 못하면 기계로도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도면 제출 이후에 승낙을 받으면 80시간 안에 그 도면 그대로 손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2주 정도의 시간을 받는 것이지요. 이때 탈락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옵니다. 자격증 시험은 두 번밖에 볼 수 없어요. 두 번 시험에 떨어지면 다시는 재시험 기회가 없기 때문에 3년의 시간이 허탕이 됩니다. 한 번 시험에 떨어지면 6개월 안에 재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도면을 제출하고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1차에 제출한 것과 전혀 다른 작품이어야 합니다. 제 아이는 다행히 목수 자질이 있는지 순조롭게 모든 시험을 통과했고 지금은 당당한 목수가 됐습니다. 사장이 아이의 능력을 보고 정식 직원으로 일할 것을 권유했고 정직원 계약을 하자고 했지만, 아이는 더 이상 그 회사에 다니지 않습니다. 저는 작은아이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혹시라도 부모 때문에 너무 빨리 어른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독일에서는 마이스터 학교를 다녀 마이스터 자격증을 받아야 자영업을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자신처럼 마이스터가 되면 아들에게 사업을 넘기고 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4대째 목수 마이스터. 저도 기대가 됩니다. 마이스터 시험도 두 번의 기회밖에 없는데. 합격하겠지요? 독일 마이스터 시험은 두 번 떨어지면 동종의 시험 기회는 평생 다시 없습니다. 아직 학교도 안 갔는데 합격을 바라는 마음, 욕심만은 아니길 기도해 봅니다

posted by 작은책